매일신문

야고부-삭발

199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던 아일랜드 출신 여성 로커 시너드 오코너는 충격적인 '빡빡머리'로 돌풍을 일으켰던 가수다. 독특한 분장과 의상, 거침없는 반항아적 모습 등은 단숨에 그녀를 여전사적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그녀의 삭발 스타일은 페미니즘과 섹시함에 대한 통념을 뒤바꾸어 놓았다. 지난 해 37세로 전격 은퇴를 선언했지만, 오코너는 90년대 세계의 뮤직 스타 중 가장 특징적인 가수의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헤어 전문가들은 사람 얼굴의 미추(美醜)는 헤어 스타일이 60, 70% 정도를 좌우한다고 한다. 아무리 얼굴이 잘생긴 사람도 머리모양이 엉망이면 영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그럭저럭 생겨도 머리 손질이 잘 돼 있으면 딴 얼굴이 된다는 거다. 머리숱이 적으면 젊은 사람도 나이 들어 보이고, 나이 든 사람도 숱이 많으면 한결 젊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스트레스와 공해, 호르몬 등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탈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머리 빗을 때마다 낙엽 지듯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아까워 죽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엉성해지는 머리는 사람을 상심하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가발을 써 봐도 눈이 매운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차린다. 한 번 빠지면 그만인 이빨처럼 머리카락도 빠진 뒤에야 그 진가를 알게 되는 법이다.

◇머리카락을 한 올 남김없이 완전히 밀어버리는 '삭발'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원래 삭발은 불가의 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하여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본다. 삭발은 우리속의 아집과 교만, 세상을 향한 온갖 유혹의 감정을 스스로 끊고 구도의 길로 들어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 사회에서 삭발은 종종 강력한 항의와 요구 등 고강도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지역 간 이해 관계를 둘러싸고 단체장 등의 삭발이 유행처럼 번지는 추세다. 방폐장 유치 때 경주'군산의 지자체장이 삭발하더니 이번엔 경북도 내 혁신도시 입지 선정 문제로 각 지역 시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경쟁하듯 머리를 깎고 있다. 영천의 삭발식에선 여성 도의원도 동참했다. 삭발 과열 양상에 마침내 경북도 입지선정위가 "머리 깎으면 점수를 깎겠다"고 경고할 지경에 이르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말을 한번쯤 되새겨볼 때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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