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임대아파트의 돈이 줄줄 새고 있다.관리비 중 일부가 통째로 사라지는가 하면 주민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각종 적립금'은 지출 내역이 의심스러운 경우도 많다. 주민들이 내놓은 폐품이나 검침수수료 등으로 조성한 '잡수입'은 아예 관리비 부과내역서 항목에서 누락돼 있는 것도 상당수다. 영구임대아파트 사업자 측의 주먹구구식 돈 관리와 지출 관행이 '불신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사라진 2억 원
대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는 올초 자체 감사에서 관리비 체납금, 퇴직금 미적립금, 난방유류 미지급금 등 미수금 중 2억여 원의 돈이 사라져 최근 회계법인에 감사를 의뢰했다. 퇴직금 적립액 중 일부를 난방유류 비용 등으로 쓰다 돈의 행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발견한 것.
대구도시개발공사 측은 "10여 년 전 아파트 설립 당시 최초 운영재원으로 쓰기 위해 마련했던 관리비 선수금 중 일부를 입주민 (관리비) 체납률이 높아지는 바람에 이곳저곳에 메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계처리 잘못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것은 내년 초 감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지난 2003년 경비직원을 해고한 후 노동위원회로부터 합의금 216만 원의 지급 결정을 받았지만 이 돈을 아파트 잡수입금에서 지불했다. 아파트 관리규약에 명백히 어긋나는 임의지출이지만 외부 회계감사는 한 차례도 없었고 별다른 문제없이 넘어갔다.
가구당 관리비 부과의 근거가 되는 '관리비 부과 내역서'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주민이 태반이었다. 한 주민은 "이 추위에 누가 복도 1층에 붙어 있는 부과 내역서를 꼼꼼히 보겠느냐"며 "관리사무소에 지출내역을 요구해도 고압적인 답변만 돌아온다"고 말했다.(사)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최병우 사무국장은 "관리비, 잡수입금을 유용하는 관행이 일부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적립금·잡수입 사용 논란
관리비에서 부과되는 각종 적립금은 직원의 퇴직 적립금과 연차수당 등으로 쓰이고 있다. 한 영구임대아파트의 경우 매월 각종 적립금은 가구당 3천~4천 원으로 매년 1천만~1천200만 원이다.
관리사무소 측은 "주민을 위해 일하는 직원에게 주는 돈인 만큼 법률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역 한 노무사는 "일반 아파트와는 달리 영구임대아파트는 법적으로 사업자가 따로 있고 입주민은 세입자일 뿐"이라며 "사업자가 퇴직 적립금이나 수당을 직접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도 주민은 규정상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데도 돈만 내는 꼴이다.잡수입은 점입가경이다. 관리비 외 수익인 잡수입은 보통 파지, 공병, 헌옷 등 폐품매각이나 옥내 광고수수료, 전기검침수수료, 연체료 이자, 고령자 고용촉진금 등에서 벌어들인 돈이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별로 연간 1천만~3천만 원에 육박하는데 관리사무소 측에서 알아서(?) 쓰고 있는 형편이다. 일반아파트와는 달리 잡수입의 지출내역을 입주민에게 아예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민이 요구해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 2000년부터 5년 간 달서구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잡수입 지출내역을 살펴보면 수입의 30%를 직원보상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나머지는 직원 교육비, 야식비, 경조사비, 친목회비, 단합대회, 관리사무소 물품 구입비 등으로 쓰였다. 관리규약에 명시된 '관리비 보전'은 고작 일부에 그쳤다.
수성구의 영구임대아파트 경우 지난 5년(2000~2004년)동안 모두 4천700만 원의 전기검침 수수료와 2천300만 원의 고용촉진 장려금 등의 잡수입이 발생했다. 관리사무소측은 "올 초 주민대표로부터 폐품 관리권한을 넘겨받았지만 지출 장부는 받지 못했다"면서 "이들이 임의대로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일부 아파트는 잡수입금을 동대표 몇명이 나눠갖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다.한 주민은 "관리사무소와 일부 주민들이 '눈먼 돈' 쯤으로 여기고 쓰지 않았겠느냐"며 "결국 한 통속"이라고 혀를 찼다.
△돈만 내고 권익은 없다
10년째 달서구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김모(55)씨는 "모든 관리비가 의문 투성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5년 12월 관리비가 8만9천 원이던 것이 지난 해 같은 달에는 21만 원, 지난 달 26만5천 원으로 올랐다. 김씨는 "집을 나올 때면 못 구멍, 부서진 문 손잡이까지 '파손금'으로 처리해 돈을 받는데 매달 걷는 수선유지비는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돈 내는 사람들의 권익은 어디에도 없다는게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아파트사랑시민연대 신기락 사무처장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 의무화, 지출내역의 투명한 공개 등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최병고·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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