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재도약의 여유를

또 한해가 저문다. 2005년 을유년도 이제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교수신문이 며칠전 올 한 해 우리 사회상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선정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연못의 물은 아래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서로 등지려 한다는 의미다. 주역의 괘 풀이대로라면 을유년 한해는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1년 내내 대한민국은 '와글와글'했다. 반대와 질시, 충돌의 사회상을 목격했고, 걱정했다. 납'기생충알 김치 소동, 안기부 도청 X파일 파문, 강정구 교수 발언 파문, 수도권 공장 신'증설 반대, 쌀 비준동의안 통과, 혁신도시 선정 지역갈등,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파문, 사학법 개정 공방에 이르기까지 한날 한시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름대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밝은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이다. 갈등과 반목의 전면에 섰던 당사자들이나 국민 모두의 심정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갖가지 이견과 논쟁으로 갈등과 대립이 없다고 한다면 정리할 것도 없고 새로운 것을 기대할 것도 없지 않은가. 출산에는 진통이 따르는 법이고,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 그 발전의 과정에는 고통이 함께 한다는 것이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가 밀물 들이닥치듯 개혁과 변화의 에너지가 분출된 해였다면 새해는 한발짝 현상에서 물러나 지난 행적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새롭게 추진할 것은 힘차게 만들어가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이 차오르면 빠지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물이 빠지면서 생기는 작은 여유, 그 공간은 타협과 포용, 상생의 문화가 싹틀 수 있는 완충지이다. 이런 공간처럼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는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시퍼렇게 벼린 칼날은 보기에도 차갑다. 이제 투쟁하고 싸우는 방법도 바꿔나가자.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부르고, 그 너머에는 파국밖에 남는 것이 없다.

새해 2월이면 대구-부산고속도로가 개통된다. 사통팔달, 지역과 지역이 연결되는 신작로가 많아지면 서로 자주 만나게 되고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기회도 많아지게 된다. 올 한 해 각 분야의 사람들이 힘쓰고 노력한 끝에 작으나마 성과를 일궈내고, 이제 경기도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지역 수출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의 경기전망조사 결과만 놓고 봐도 새해는 희망차고 밝은 새해를 기대케 한다. 우리 사회가 비록 2005년 한 해 절망과 좌절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지만 '희망'이라는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 새해는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고,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힘 또한 우리에게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어저께 '2005년 한국경제 회고와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05년은 정치'경제적으로 과거 문제에 대한 보수(補修) 과정에서 국민 역량 결집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며 "내년에는 성장력을 회복하고 저출산, 고령화를 대비하는데 경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성장력 복원에 힘써 새해를 '한국경제의 르네상스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하고 있다.

눈에 비치는 밝은 전망에 함몰돼 어둡고 어려웠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에만 얽매여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면 더 큰 부담을 부를 수 있다. 지역과 계층, 분야, 개인과 개인사이의 벌어진 틈을 메우고 취약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그 기반을 닦아야 한다. 낡은 것은 보수하고 필요한 것은 새로 길을 내는 재도약의 시간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늘 기회가 오게 된다.

세밑 서문시장 대화재 소식으로 민심이 뒤숭숭하지만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속히 슬픔을 딛고 재기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단기 4339년, 병술(丙戌)년 새해다.

서종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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