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겨울 바람이 마른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새벽이면 나는 아버지가 신문을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남폿불을 밝히고 신문을 읽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맞은 편 벽에서 일렁이는 모습을 지켜보다 다시 잠에 빠져들던 내 유년의 편린들. 그 기억은 언제 들춰봐도 아름답다.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던 아버지는 참으로 열정적이셨다. 장손으로서 고향을 지키기 위한 꿈을 접고 도시를 떠나야 했던 아버지에게 신문은 정신적인 위안처였는지 모른다. 신문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사랑방에서 글을 읽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유난히 안온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함박눈이 내렸다.
아버지에게 신문은 소중한 삶의 양분이었다. 하지만 우편물이 많지 않던 시절, 보급소에서 십여 리나 떨어진 집까지 신문을 갖다 나르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신문보급소에 들르는 일은 어린 내게 무척이나 귀찮고 성가셨다.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돌가루종이 띠를 두르고 나를 기다리던 신문. 매일신문과의 인연은 그렇게 30년도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석간이던 매일신문을 고향에선 하루가 지나서야 받아 볼 수 있었지만 아버지에겐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친구들과 해찰하다 상처투성이가 된 신문을 내어놓는 날이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신문과 친숙해져 갔으며 읽을거리에 대한 소중함도 커져 갔다.
어느 여름날, 힘없이 졸고 있는 미루나무 아래에서 신문을 펼쳐들고 오래도록 읽었던 기억이 있다. 행간과 행간 사이에 숨은 사유의 세계를 알 턱이 없음에도, 낯설고 경이로운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처럼 무엇을 진지하게 읽고 생각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영상물이 주는 즉각적인 이미지보다 사유의 깊이가 있는 글을 더 좋아한다.
풍요로움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서너 가지의 신문을 오래된 습관처럼 구독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영자 신문을 제외하고도 이른 새벽 날아오는 중앙지와 오후에 찾아오는 지역신문.
영자 신문과 중앙지가 망원경 같다면 지역신문은 현미경 같다. 망원경으론 결코 볼 수 없는 작고 친숙한 것들이 지역신문 안에 숨어 있다. 그곳엔 고향 같은 정겨움이 있다. 종종 지역의 명사들이나 지인들을 지면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크지만, 아파트의 분양소식이나 다양한 시장 정보의 유익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의 문화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지역사회 발전이나 애향심 고취 따위의 지역신문이 가지는 전문적인 기능만을 최고로 치고 싶진 않다.
어쩌면 아버지의 울타리처럼, 독특하고 친근하며 신뢰성이 느껴진다는 소박한 이유에서 오늘도 오후를 기다리는지 모른다. 그 옛날 아버지가 구독하던 신문을 읽노라면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같은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매일신문은 내게도 소중한 삶의 자양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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