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대화재가 7일로 발생 열흘째를 맞았지만 사고 수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상인은 물론 대구시에도 득이 되지 않는 극한 대립을 빨리 끝내고 이제는 다른 지역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등 다함께 지혜를 모아 사고 수습 및 복구에 나서야 할 때"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구·경북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재래시장 화재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럼 그들은 화재 이후 어떤 '처방전'을 들고 나왔을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옷감과 관련된 부자재 시장으로는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이곳에도 그동안 수차례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1998년 일어난 광장시장 화재는 이번 서문시장 화재와 거의 유사하다. 그 해 11월 12일 새벽에 일어난 불은 6개 상가 112개 점포를 태우고 11억 2천여만 원(소방서 집계)의 재산피해를 냈다.
불이 난 상가는 포목점과 옷가게가 밀집한 오래된 목조 건물. 피해 점포 대부분이 한복원단 도매점 등 의류와 침구류 취급 점포인 데다 스프링클러 등 자체 소방시설이 전혀 없어 초기 진화에 실패한 점도 비슷했다.
화재 뒤 상인들은 새로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8개월 동안 개별적으로 다른 점포를 얻거나 잠시 영업을 중단했고 점주들은 비용을 갹출, 3층짜리 철골 건축물을 신축했다. 종로구청이 화재 잔해를 치워주고 저리의 융자를 알선해 주는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모든 복구는 상인들의 몫이었다.
1995년 10월 일어난 서울 성동구 왕십리종합시장 화재상황도 비슷했다. 시장은 화재가 나기 전 646곳의 상가와 가내공장이 모여있던 지역 내 중심 상권이었지만, 당시 화재로 상가건물의 70% 이상이 전소돼 시장 기능을 잃었다.
현재 이곳에는 지상 27층(높이 80m), 지하 4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3개 동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 역시 사고 수습 과정은 길었다. 450여 명의 상인들이 2년이 지나서야 재건축조합을 결성, 주상복합건물 건립을 추진했지만 1인당 평균 3, 4평 정도에 불과한 등기상 소유자만 640명에 달해 건축허가를 받는 데만 7년이 걸렸을 정도.
일부 상인들 반발로 화재잔해를 치우는 데만 5년이 걸리는 등 진통을 겪었다. 상인들은 여전히 건물 주변 골목에 노점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는 형편. 행정당국의 지원대책은 상인들의 임시 숙소를 마련해주고 운영자금 융자를 알선해 주는 정도였다.
지난해 3월 경남 통영시 서호동 재래시장에서 발생한 화재 수습도 쉽지 않았다. 당시 목조 상가건물 1, 2층 내 28개 점포에 불이 나 소방서 추산 2억9천여만 원(상인들 주장 18억4천여만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대부분 영세 점포주들이었지만 통영시가 인구 30만 명 미만인 데다 피해액이 10억 원을 넘지 않는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어 피해 복구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이 진정서를 내고 민원을 제기하는 등 마찰이 빚어졌지만 결국 상가번영회에서 건물을 신축기로 결정됐다. 화재 발생 이후 10개월간 상인들은 주변에 임시 가설물을 설치, 영업했다.
◆전문가들, "이렇게 하자"
재난복구 전문가들은 "통상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지자체가 해결 주체로 나서야 하는 만큼 대구시가 주도적으로 사고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기획단 자문위원인 서울대 김동욱 교수(행정학)는 "서문시장 상인 간 이해 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에 손을 놓고 있는 대구시의 안일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라며 대구시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경찰에 맡기고, 대구시는 상인들의 피해규모를 빨리 파악하는 한편 그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또 긴급 재난기금이나 특별지원금 등의 재원을 어떻게 정부에서 지원받아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전문위원인 한양대 김태윤 교수(행정학)는 "대구시가 특별재난지역선포 등 정부지원만 바라보는 지금의 형국으로는 사태의 조기 수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재원인 및 진압과정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진실을 밝힘으로써 상인들과의 오해 소지를 푸는 것이 향후 복구과정에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새만금사업이나 경주 방폐장 유치 때처럼 지역사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정부의 행정적인 지원을 더 얻을 수 있는 만큼 피해상인들도 이 사태를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울산업대 김찬오 교수(안전공학)는 "정부와 대구시는 재난기금, 특별재해기금, 재래시장 지원금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통로를 모색하는 등 피해상인들이 빨리 영업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믿음을 줘야 한다"며 "상인들도 폭력을 앞세운 무조건적인 집단행동은 부작용만 낳는다는 것을 깨닫고 행정당국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방재연구소 심재현 연구1팀장은 "대형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사태 해결에 대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지루한 공방만 반복하는 것은 방재에 대해 전혀 준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또 "재난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사전에 정부, 국민, 전문가 등 재난관리 주체들이 예방, 대비, 대응, 수습·복구 등 단계별로 역할분담을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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