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영화계는 '강한 남자'가 지배한다.
지난해에는 이영애, 전도연 등 굵직한 여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사랑을 받았다면 2006년에는 강한 남성들의 영화가 여성관객 뿐 아니라 남성관객들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격적인 '남성 영화'의 물결은 지난해 말 개봉했던 '태풍', '왕의 남자'에서 시작됐다. '태풍'의 장동건과 이정재, '왕의 남자' 감우성,이준기가 짝을 이뤄 남성들의 세계를 보여줬다면 올해 초 개봉한 '싸움의 기술'은 세대차이를 뛰어넘어 백윤식과 재희가 한 팀을 만들어 새로운 남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달 한주일 단위로 앞다퉈 개봉하는 '야수', '홀리데이', '무극'에는 각각 권상우와 유지태, 이성재와 최민수, 장동건 등이 거친 남성 세계를 그려낼 예정이다.
그 밖에도 올 상반기 개봉 예정인 남성영화들은 류승범·황정민 주연의 '사생결단',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 박중훈·천정명의 '강적', 신하균·김민준 주연의 '예의없는 것들', 설경구·조한선의 '열혈남아', 양동근·김성수의 '모노폴리', 차인표·조재현 주연의 '한반도'등이 있다.
이처럼 남성 영화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흥행을 보증하는 여배우 수가 한정돼 있다는 점과 주요 남자 배우들이 연약한 꽃미남 이미지에서 탈피, 연기 변신을 하고자 하는 점 등이 맞물려 있다.
덕분에 올해, 관객들은 어느해보다 다양한 남성 캐릭터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12일과 19일 개봉 예정인 '야수'와 '홀리데이' 모두 관람등급에 구애받지 않고 거친 남성액션으로 정면 도전한다는 점.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는 두 영화의 관람등급을 나란히 18세 이상 관람가로 정했지만 이들 영화는 주요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영화 모두 성인 관객에게 얼마만큼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 야수
12일 개봉하는 영화 '야수'는 진흙탕 같은 어둠의 세계를 나뒹구는 거친 남자들이 주인공이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불같은 성격의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정의밖에 모르는 냉철하고 완벽한 최고 엘리트 서울중앙지검 검사 오진우(유지태). 이 둘은 각기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가 두 사건 모두 구룡파 보스 유강진(손병호)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 팀을 이룬다.
오진우는 옳다고 믿는 일엔 앞뒤를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차근차근 아래부터 단계를 밟아가며 증거를 찾아나가는 냉철함을 갖췄다. 반면 장도영은 절제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고 대부분의 말들은 욕지거리다. 형사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꼴통' 장도영은 동생의 죽음을 맞으며 성질이 폭발한다. 감옥에서 갓 출소한 동생이 병든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겠다며 폭력 조직의 암투에 끼어들었다가 죽음을 맞게 된 것. 그 후로 더욱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범죄현장을 뛰어 다닌다.
정계 진출을 노리는 구룡파 보스 유강진은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장도영의 가족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오진우에게 수사를 종료하라는 외압을 가한다. 이들은 각자 세 마리 야수로 표현된다. 법과 정의가 관계 없음을 알기에 온몸으로 대항하는 야수, 법과 정의를 신앙으로 여기는 야수, 법과 정의 사이의 괴리를 처세에 활용하는 야수.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형적인 캐릭터 묘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조폭 보스 유강진은 이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캐릭터다. 조폭 우두머리지만 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버지에다 대외적으로는 개과천선한 재력가다. 직접 주먹질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도 없으며 베풀 줄 아는 만큼 배신에 대해선 망설임없이 가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각기 다른 남성 캐릭터의 명암을 뚜렷하게 살려낸 '야수'는 남성적일 수 밖에 없다. '야수'로 데뷔하는 김성수 감독은 "야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잠재돼 있는 원시적 잔인성"이라고 설명한다.
강한 남성성이 주를 이루는 영화 '야수'는 남성들의 힘겨루기 가운데 '정의'란 무엇인지 반문하게 만든다.
◆ 홀리데이
19일 개봉하는 영화 '홀리데이'는 198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강헌 사건을 영화화해, 제작 초기단계부터 눈길을 끌어왔다.
1988년 10월, 올림픽을 치러내고 전 국민이 올림픽 세계 4위라는 감흥에서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발생한 지강헌 사건은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 영화에서 실명인 '지강헌' 대신 '지강혁'을 사용해 픽션의 요소를 가미했다.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형을 받아 복역중인 지강혁과 죄수들은 호송차를 전복, 탈출에 성공한다.
권총 1정과 실탄을 빼앗아 무장탈주에 성공한 강혁과 일당들은 원정 강도와 가정집을 돌며 인질극을 벌이는 등 서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의외로 인간적이고 예의바른 강혁 일당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탈주 9일째 되던 날, 북가좌동의 가정집에 숨어있던 강혁 일당은 자신들을 끈질기게 쫒던 경찰관에게 발각되고 경찰과 최후의 대치극을 벌이게 된다. 강혁은 마지막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된다"는 유명한 말을 당시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던 전국의 매스컴을 향해 외친다.
제작사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생존한 실존 인물들을 만나 6개월에 걸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내막을 찾아내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전북 익산에 10억원을 들여 교도소 세트를 지어 화제를 모았다. 특히 1980년대 교도소 등지에서 일어난 각종 인권침해 등을 사실적으로 담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배우 이성재가 지강혁으로 분해, 체중을 감량하고 군살없는 근육질 몸매를 만들며 완벽한 변신을 시도했다. 최민수는 실제 사건에는 없는 가상의 악질 교도관역을 맡아 악랄하고 잔인하게 지강혁을 쫒는다.
◆ 무극
'패왕별희'의 천카이거 감독이 세계 시장을 노리고 만든 작품인 '무극'이 26일 개봉한다. 장동건 주연의 '무극'은 이미 12월 중순 중국에서 개봉해 중국 1백년 영화계 역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했고 제63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제 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도 진출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장동건과 홍콩배우 장바이즈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영화 '무극'은 시간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대륙이 배경이다. 초인적 능력을 지닌 노예 쿤룬(장동건)은 야망으로 불타는 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장군의 갑옷을 입고 그를 대신해 왕국으로 떠난 쿤룬 앞에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왕비 칭청(장바이즈)이 나타나고 그는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쿤룬은 목숨을 걸고 왕비를 지켜내지만 왕비는 그를 쿠앙민 장군으로만 안다. '무극'은 운명을 초월해 사랑을 이루려는 노예 쿤룬과 절대미를 얻은 대신 진실하나 사랑을 할 수 없는 왕비 칭청, 그리고 패배를 모르는 승리의 장군 쿠앙민의 엇갈린 사랑을 그리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 영화 '야수'의 권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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