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방폐장 희망이 보인다-(3)영국 셀라필드 원자력단지

1만여명 고용 창출…소비·생산활동 주도

세계 최초로 원전과 방폐장을 상업용으로 가동한 나라 영국. 그 중 70%가량의 원전이 몰려 있는 '셀라필드 원자력 단지(Sellafeld Nuclear Site)'는 2003년까지 운전했던 원자로 4기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 방폐장을 두고 있어 영국 원자력산업의 산실이자 메카로 불리고 있다.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는 영국 중서부 공업도시인 맨체스터 공항에 내려 차량을 이용, 북서쪽으로 4시간가량 거리에 있는 아담한 해안도시가 바로 셀라필드. BNFL(영국핵연료공사)이 운영하는 원자력 단지가 위치한 곳이다.

◆홍보전시관

세계 어느 나라 방폐장 등 원전시설을 가더라도 홍보관은 마련돼 있을 정도로 운영주체 측은 원전과 방폐장의 안전성과 국가 에너지산업에 대한 기여도 등을 홍보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스페인을 거쳐 영국에 도착, 가장 먼저 가본 곳은 연간 15만여 명이 찾는다는 셀라필드 원전시설의 홍보전시관. 방문객센터 책임자인 클레어 파와(35·여) 씨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는 홍보전시관을 1시간가량 함께 소개하면서 영국의 원전역사와 방폐장 특징 등을 세밀히 설명했다.

1988년 건립돼 원자력발전소와 인근 방폐장에 대한 안전성 등을 홍보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원전관련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원전시설과 방폐장의 유해성 및 안정성 여부, 역사, 발전상황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는 때문인지 원자력은 물론 가스·석탄·바람·태양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발전 원리도와 모형을 제시하면서 퍼즐을 푸는 방식 등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세계 지도 위에 국가별 전기 사용량을 표시하고 있는 녹색 불빛이 눈길을 끌었다. 불의 밝기로 각 나라의 전력 사용량을 알아보는 시설로 한국은 대체로 밝게 표시돼 많은 전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북한은 암흑천지여서 전기가 부족한 것은 물론 절대적으로 전기를 적게 쓰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국가별 원자력 사용비율은 2003년말 기준으로 프랑스 77%, 벨기에 58%, 스웨덴 44%, 스위스 36%, 일본 34%, 핀란드 31%, 독일 31%, 영국 23%, 미국 20%, 캐나다 13% 등으로 표시돼 있다.

또 이곳에서는 솔라(solar·태양) 파워로 휴대전화 충전과 형광램프에 불을 밝히는 방식을 소개하고, 풍력발전기의 날개 하나가 50마력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우라늄에서부터 화학약품을 첨가해 마그녹스(magnox·우라늄으로 만든 기둥) 등의 과정을 거쳐 전기가 생산되는 과정도 묘사하면서 마그녹스 1개가 150t가량의 석탄 화력과 같은 정도의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그만큼 원자력에 의한 에너지 생산이 원가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셀라필드 원전과 고용창출

셀라필드 원자력단지(100만 평) 내 홍보전시관과 인접한 원전은 영국내 최대 핵연료 주기시설 단지로 1956년 가동을 시작, 수명이 끝나 발전을 멈춘 2003년 3월 이전까지 47년간 하루 24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해왔다. 세계 첫 원전(1~4호기)으로 원전 후발국들의 본보기가 돼왔던 이 곳은 가로 1km 세로 1.5km 부지에 소방서와 의료시설, 각종 연구소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현재 원전 가동은 멈췄지만 관련시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폐기물)를 재활용, 전기를 생산하는 재처리시설이 들어서 영국 내는 물론 일본과 유럽 등지로부터 사용후핵연료를 받아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고 있다.

하지만 BNFL 측은 원전의 수명이 다된 만큼 체계적인 복구로 원전시설을 하기 이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완전 복구가 이뤄지기까지는 150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관할 시청이 제시한 계획에 따라 연차적으로 복구해 나가야 하는 데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1만 명에 이르는 이곳 원전 관련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대책을 먼저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경우 연구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실직자가 돼 시와 국가가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전이 위치한 셀라필드는 웨스트컴프리아 도(道)에서 가장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 원전단지 내에 근무하는 인력이 연구소 직원 300명 등 정규직 8천 명, 계약직 2천 명 등 1만여 명에 이르면서 지역의 소비와 생산 등 경제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반경 10~20km거리의 와이트헤븐·월킹톤·밀럼 마을 등에 살고 있으며 70%가 해당 지방의회 유권자들로 분류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20%가량이 BNFL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원전이 발전을 멈추자 주민들은 환경오염보다는 일자리가 사라질까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고 있다. 원전이 문을 닫은 지 벌써 3년째이니 실직의 공포가 더욱더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는 게 대다수 주민들의 얘기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해당 시정부 등에 원전시설을 그대로 유지해 줄 것을 건의하는 등 비상이 걸린 상태다. 원자력 관련 산업이 위축되거나 축소되면 각종 소매점이나 식당 매출, 공산품 판매액이 떨어지고 주업인 낙농업까지 타격을 받는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원전과 방폐장 사이 시스케일 마을에 사는 챨스(73) 할아버지는 "아들과 딸 모두 원전관련 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어 실직의 공포를 느낀 지가 오래됐다"며 "최근 일부 용역직들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 불안감은 더욱더 커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의 일부인 방폐장

원자력발전소에서 차량으로 셀라필드 마을을 거쳐 7km가량 간 지점, 고요한 해변가의 드릭(drigg) 마을에는 30만 평 규모의 중저준위방폐장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대전 때 무기를 만든 장소인 데다 폐기물 운송이 편리하도록 바다를 끼고 있는 것이 방폐장으로 선정된 가장 큰 이유인 드릭은 셀라필드 원전 등에서 사용한 휴지·플라스틱병류·작업복·포장상자 등 고체수거물을 압축해 보관하는 곳으로 1960년대 초부터 매립을 시작, 2060년까지 사용할 계획이다.

방폐장을 마을 언저리에 둔 100여 가구 규모의 드릭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3km 전방에 주민 5천여 명 규모의 셀라필드를 지나야 한다. 방폐장 근무인원 100여 명은 대부분 드릭과 셀라필드에 살고 있다. BNFL가 연구직이나 전문 엔지니어 등은 공개채용 방식으로 뽑았지만 단순노무직 등 계약직은 모두 지역 주민 우선 고용제를 택한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BNFL은 매년 지역의 자선단체와 병원 연구소, 지역쇄신 프로젝트 등에 연구비나 시설개선비 등으로 300만 파운드(60억 원가량)를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지역 보건당국과 환경보호단체, 주민 등이 함께 참여하는 '드릭 처분시설 연락위원회'를 연간 4차례씩 열어 방폐장의 운영현황과 향후 사업계획, 지역현안 등을 제시하고 함께 해결하는 등 상호 공동발전 방안을 모색하면서 '윈윈'하고 있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사진: 원전단지와 방폐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셀라필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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