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중략)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 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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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무언가가 그립다. 게다가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서해 변산반도로 갈 일이다. 이 겨울, 모항에서 '세상을 내동댕이 치며' 아린 가슴을 씻을 일이다. 하지만 서해바다는 동해처럼 단번에 큰 파도를 앞세워 위세를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 두 차례 드러내는 갯벌은 설움도 미움도 다 감싸안는다. 갯벌은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모항이라는 이름처럼 포근하다.
모항에서 마음을 다독였다면 아름다운 해안선이 보이는 외변산을 둘러볼 일이다. 새만금방조제에 핵폐기장까지 최근 몇 년간 온통 변산반도를 들쑤셔 놓았지만 변산은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 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중심은 채석강과 적벽강이다.
채석강은 얇은 바윗장이 켜켜이 쌓여 있는 절벽. 멀리서 보면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물때를 모르고 찾은 게으름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오후 2시. 바닷물은 이미 바닥의 암반을 덮어버렸다. 서둘러 격포항 쪽으로 돌아가 절경이라는 해식동굴을 찾아보지만 이곳도 사정은 마찬가지. 아침부터 뿌려대던 겨울비 때문에 일찌감치 서해낙조는 포기한 터. 그나마 절경이라는 해식동굴에도 들어가 볼 수 없는 지경이고 보니 물때를 확인 못한 아쉬움은 더 크다. 물때를 맞춰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질때 채석강을 찾으면 돌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다생물을 볼 수 있다. 아이들 생태체험학습장으로도 그만이다.
격포해수욕장을 사이에 두고 채석강과 붙어 있는 적벽강 역시 장관이다. 적벽강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노닐었다는 적벽강에서 따온 이름으로,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뛰어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채석강과 비슷한 지질을 보이지만 색깔이 붉다. 붉은색 바위와 절벽이 경이롭다. 특히 해질 무렵 햇빛을 받아 더 진홍빛을 보일 땐 장관을 이룬다.
맑은날이라면 서해안 3대 낙조를 놓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강화 석모도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변산반도의 일몰을 최고로 친다. 변산반도 낙조 중에서도 으뜸은 도청리의 솔섬낙조다. 채석강에서 30번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모항 못미쳐 전북학생해양수련원이 나온다. 이곳 안쪽의 알려지지 않은 아담한 해수욕장에서 솔섬을 배경으로 지는 해가 일품이다. 썰물 때면 육지와 연결돼 70m 정도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진한 붉은빛의 여운이 남는 낙조명소다. 간조 때 격포항 쪽 채석강 해식동굴 안에서 바라보는 노을도 아름답다.
변산에서 채석강이 있는 격포를 거쳐 곰소로 이어지는 90㎞의 30번 해안도로 드라이브도 꼭 권할 만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져 있을 만큼 서해안 최고의 해안드라이브 코스다.
단, 변산의 아름다움에만 빠졌다간 자칫 여지껏 논란이 일고 있는 새만금방조제에 대한 문제에 둔감해질 수도 있다. 개발이냐, 환경이냐. 우리의 미래를 둘러싼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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