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림받은 '새주소' 생활속에 정착을

10년동안 대구에만 무려 60억 원이 투입된 새주소사업이 지난해 말 사실상 마무리 됐으나 아직 정착되지 않아 적극적인 활용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편을 취급하는 정보통신부, 물류회사들은 물론 경찰과 소방 당국도 '새주소'를 사용하지 않는데다 사용할 계획도 없는 등 자칫 '국책 프로젝트'가 헛 돈만 날린 채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쉽고 편리한 주소체계'를 하루 빨리 자리잡게 하기위해 중앙정부가 법제 정비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거 안써요!= 18일 대구 달서우체국 우편물류과. 설을 맞아 하루 평균 3천500여 개였던 우편물이 1만 개까지 늘어났다. 직원들이 눈코 뜰 새 없었다. 사무실 한켠엔 옛 주소 지번을 표시한 지도가 붙어 있었다. 새주소 사업이 지난해 완료돼 대구시내 모든 거리(달성군 제외)에 새주소가 부여됐지만 우체국 사람들은 이를 쓰지 않고 있는 것. 이 곳 관계자는 "편지나 택배를 보내는 사람이 여전히 옛날 주소를 사용한다"며 "새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0.1%에도 못 미쳐 새주소를 활용할 일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보통신부는 옛 주소 체계로 짜인 우체국 우편번호 변경도 고려치 않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추진한 새주소 사업을 같은 정부부처인 정보통신부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

확인결과, 대구 시내 택배회사들도 새주소를 사용하지 않고 있고 행정자치부 산하인 소방서와 경찰서도 신고 출동시 새주소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앙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주민등록증, 토지대장, 등기부 등본 등 모든 법적 주소가 옛날 방식 그대로 존재, 주민들의 새주소 사용이 사실상 막혀있는데도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는 것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정부는 주민등록법 등 관련 13개법을 그대로 놔 두고 새주소 사업을 추진했다"며 "이 상태로는 도저히 옛 주소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전했다.

◆어떤 사업이길래= 정부는 복잡한 우리나라 주소체계가 우편, 택배사업은 물론 국가경쟁력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1996년 선진국 기준을 적용해 도로, 건물 위주의 '새주소사업'을 추진했다.

일제시대의 잔재로 남아았는 토지 번호(지번·地番) 중심의 주소체계는 개발 순서대로 고유번호를 매겨 분할, 합병 등을 통해 나중에 토지를 개발하면 이웃 간 주소의 연속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다.

정부는 개발 순서에 상관없이 일대 도로를 기준으로 왼쪽 건물은 홀수, 오른쪽 건물은 짝수로 고유번호를 매기는 식으로 누구나 찾기 쉬운 주소를 만들기로 했다. ○○시 ○○구 ○○동 ○○번지(○통○반)의 구조를 ○○시 ○○구 ○○동 ○○길(도로명) ○○(건물고유번호) 체계로 변화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대구시도 새주소사업을 시작, 지난해 달성군(2007년 완성 예정)을 제외한 대구시내 7개 구의 새주소 부여사업을 끝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0년 동안 국비 13억7천만 원, 시비 16억4천600만 원, 구비 30억4천100만 원 등 모두 60억5천700만 원이 투입됐다. 이 돈은 6천800개의 도로명과 21만 개의 건물번호판을 제작하거나 이를 안내하는 새 지도 76만부를 배포시키는데 사용됐다.

◆반드시 정착시켜야= 대구시 관계자는 새주소 사업의 실패와 관련, "1996년 새주소 사업을 시작할 당시 내무부가 다른 기관의 협조도 없이 독불장군식으로 계획을 무작정 추진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당시 체신청을 산하에 둔 정보통신부는 물론 경찰, 소방 등 산하 부서들과도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으니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대구시 및 각 구청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특별법을 만들어 모든 법정 주소체계를 새주소로 단일화,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은 사업의 결론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토지번호를 주소로 사용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는 것. 현 새주소 사업의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도로와 건물번호로 주소를 표시하고 있고, 우리 지번 문화를 정착시킨 당사자인 일본마저 이미 40여년전 블록 단위의 새주소 체계로 돌아섰다. 일본은 도로·건물이 아닌 하천·철도 등 특정 시설을 경계로 블록을 나누고 있다.

대구달서구 이상희 토지행정 담당은 "도로와 건물번호를 도입한 새주소가 옛 주소보다 훨씬 간결하고 위치 파악이 쉽다"며 "세계 모든 나라들이 편하고 쉬운 주소를 쓰는데 우리만 복잡하고 어려운 주소를 쓰고 있으니 하루 빨리 고쳐야한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은 새주소를 정착시키기 위한 법(가칭 '도로명주소법') 제정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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