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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속으로 들어간 개-(1)현대미술가 서영배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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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오랜 벗이자 하나의 유니콘"

◇ 올해는 병술(丙戌)년, 개의 해다.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개를 많이 찾는 1년이다.기록상 BC 9500년 경부터 인간에 의해 사육돼 온 개는 우리나라에서도 당(唐)나라 문헌에 사육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가장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한 동물이다.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표현(욕설이나 속담 등)이 부지기수일 만큼 우리와 밀접한 존재다.

이런 까닭에 개는 옛 민화를 비롯, 다양한 미술 작품에 등장해 왔다. 오늘날에는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등 그 표현소재도 다양하다. 개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작가 중 7명의 작품과 함께 그들이 말하는 개 이야기(犬說)를 들어본다.

고등학교 때 마음에 두고 있던 커다란 개를 선물받은 나는 그 개와 개집에서 3, 4일을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님께서 손수 지어주신 겨울용 솜이불을 함께 깔고 덮고 자며 생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의 관계에 신뢰를 주고 교감하기 위한 소통의 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개에 대한 나의 관심이 이렇듯 각별했었으니 자연스럽게 개는 작가인 나의 작업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동안 사람의 얼굴과 개의 안면(顔面)을 대비시키거나, 혹은 개의 안면만을 보여주는 사진작품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최근 열린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에서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인화함으로써 인간 정체성의 모호함과 관람객들의 시선집중을 유도했다.

사람과 개의 특정부분만을 보여주는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무한한 추측과 상상이 가능하게 했다. 나는 이를 통해 '차이와 같음', '부분과 전체', '확신과 불확신', '안과 밖'의 문제에 대해 다시금 관객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오브제와 비디오 작품은 내 자신이 '나는 개가 좋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 자신을 담은 영상물과 투명한 아크릴 선반 위에 솜뭉치, 약병, 개줄 등 개와 관련한 오브제들을 설치해 시청후각적 감상이 가능하게 했다.

눈에 보이는, 그러나 무엇인지 확실치 않은 작품들은 '안과 밖', '숨김과 드러냄', '전체와 부분', '진실과 허상'의 차이와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 작업에서 개란 존재는 이렇듯 작가의 눈에 비쳐지고 보여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미술로 가져오게 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앞에 두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도 등장하고 있다.

한 달에 몇 차례 존경하는 선배가 개를 기르는 농장에 꼭 들른다. 명절날 고향에 가는 설렘 같은 흥분을 느끼면서…. 그곳엔 나의 오랜 벗이자 이제는 내게 하나의 유니콘(unicorn)이 되어버린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는 견(犬)들이 있기에….

개는 늘 한결같다. 자기를 포장하지도, 상대를 속이려고 가식적인 행동과 거짓도 하지 않는다. 목표를 위해 과정을 생략하는 결과도 물론 없다. 우리 인간처럼 자기를 뽐내고 남을 업신여기는 행동은 더더욱 모른다.

'개만도 못한 인간',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살자'라는 속담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현대미술가 서영배

사진: '붉은 개'(2002, 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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