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브로크백 마운틴', '메종 드 히미코'의 공통점은?
최근 1천1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한국 흥행영화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왕의 남자'와 아카데미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브로크백 마운틴', 또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메종 드 히미코'는 최고 흥행을 했거나 흥행예감을 준다는 것 외에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동성애 영화로는 '로드무비', '내일로 흐르는 강' 등이 있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동성애를 다룬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한·미·일 세 나라의 동성애 코드 영화가 나란히 주목받고 있다. 이들 영화는 작품성 뿐만 아니라 흥행면에서도 성공해,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 영화의 수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5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은 남성들간의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일 개봉한 이 영화는 두 남자의 평생에 걸친 아름다운 사랑을 대자연의 풍경 속에서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어, 남성 동성애자 역시 우리처럼 사랑에 행복해하고 아파하는 연인일 뿐이라는 것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1960년대 브로크백 마운틴 목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 에니스와 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 두 사람만 남게 된 에니스와 잭은 차츰 가까워지고, 비바람과 싸우던 어느 날 그들은 만취한 상태에서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찾아온 낯설기만한 감정을 채 확인할 사이도 없이 헤어진다.
이렇게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낸 1년은 두 사람이 산을 내려와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한 일상의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이다. 4년 후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년에 두 세 번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을 20여년간 반복하는 그들은 금기의 사랑에 빠진 남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로키 산맥의 서정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그려내, 동성간의 사랑도 이성간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관객 1천100만명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왕의 남자'는 제목에서부터 동성애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하지만 장르가 사극이라는 점과 동성애가 은유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은 '동성애 영화'라는 불편한 느낌을 최소화해준다.
영화에서 공길은 실제가 아니라 놀이판, 곧 무대에서만 장생의 파트너이고 여자다. 연산군이 공길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니라 놀이다. 하지만 그들의 놀이판이 실제 권력암투와 뒤섞일 때 연산이 공길에게 입맞추는 장면이 등장해 동성애의 뉘앙스를 풍긴다.
남남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왕의 남자' 최고의 스타 이준기. 그가 맡은 광대 공길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꽃미남으로, 관객들에게 거부감없이 다가간다.
또 사극이라는 장르도 관객에게 동성애적 느낌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하다. 동성애가 주는 정서적 충격에 대해 시간적 거리감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연산과 공길의 성적 긴장감은 '놀이'같은 개념으로, 공길과 장생간의 관계는 플라토닉 러브로 이상화돼 있다.
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1월 말 불과 전국 5개 관에서 개봉됐지만 개봉 5주 만에 관객 5만 명을 넘기면서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섬세한 터치로 장애인 여성의 사랑과 이별을 그려낸 이누도 잇신 감독이 이번에는 늙은 게이들의 말년을 그린 영화를 선보인 것.
사오리는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동성애자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삼아 찾아간 '메종 드 히미코'('히미코의 집'이란 뜻의 불어)에서 사오리는 우연히 오래 전 떠나버린 아버지를 찾게 된다. 늙고 병든 아버지가 있는 그곳에서 사오리는 게이의 희로애락과 그들을 향한 사회의 부당한 편견을 경험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아버지와도 화해를 시도한다. 동성애를 인정하거나 용납할 수 없었던 여주인공이 관객 대신 그들의 세계를 관찰하고 체험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최근 동성애 영화가 한국관객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나라에 동성애를 다룬 영화가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하지만 1997년 영화 '해피투게더'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수입불가 판정을 받는 등 동성애 영화는 상영 자체가 힘들었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는 1년간의 논란 끝에 개봉됐으나 저조한 흥행성적을 내고 막을 내렸다. 그 후 '패왕별희' '결혼피로연', '인앤아웃', '바운드', '프리스트', '헤드윅' 등 다양한 동성애 영화들이 국내에 소개됐고, 국내에서도 '내일로 흐르는 강'이나 '로드무비' 같은 동성애 영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동성애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휴머니티'로 포장된 채 공개되곤 했다.
동성애는 이제 영화의 색다른 소재로 등장했고 관객 역시 이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호기심과 거부감을 넘어서서 일상 생활에서도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동성애 영화의 흥행 이후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 (위로부터)왕의 남자, 브로크백 마운틴, 메종 드 히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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