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천자문과 후진타오 율시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으로 시작되는 천자문(千字文)은 1천 자로구성된 한자(漢字) 교재 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1천 개의 각각 다른 글자를 무작위로 나열만 시킨 책이 아니라 4자의 글자로 된 사자성어(四字成語) 형태의 문장이 두 토막씩 붙여져 8자로 된 문장 125개가 모여서 된 책이다.

'글자'만 모은 책이 아니라 8자의 글자로 우주와 역사'정치'문화'도(道)의 뜻을 두루 해설한 '문장'을 지은 책인 셈이다.

첫 구절인 天地玄黃(천지현황), 宇宙洪荒(우주홍황)도 인간의 눈이 닿는 하늘은 파랗지만 그 너머 미지의 세계는 검은 암흑의 세계이고 누런 땅은 중국의 황하 문명을 뜻하는 우주 생성의 의미를 담은'문장'으로 해석한다.

1천500여 년 전 양나라 무제 때 주흥사란 신하를 시켜 하룻밤 동안에 천자문을 완성시켰을 때 '아우를 병( )'자 단 한 자만 복(형태는 다름) 999자의 각기 다른 글자를 8자씩 가려 뽑아 우주천지의 조화와 철학과 인륜의 도'자연의 섭리 등을 해설하는 독립된 문장이 되도록 창작해 낸 예지는 역시 중국답다고 할 만하다.

이후 4자로 된 문장 형태는 중국 시(詩) 문학이나 칠언율시 고사성어(故事成語) 등에서 자주 원용돼 왔다. 바로 그 예지가 며칠 전 21세기에 와서도 중국의 정치 지도자인 후진타오의' 8영8치(八榮八恥)=8가지 영광과 8가지 수치'란 4자성어형 율시(律詩)에서 다시 한번 빛났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중국의 민중과 청소년'당간부를 이끌어 갈 8가지의 가치를 계시한 그 율시가 총리 골프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을 훈계하는 듯한 내용이어서 낯이 뜨겁다. 중국의 온 언론과 네티즌들이 '교과서에 싣자'며 열광한 후진타오의 4자성어 구절(천자문의 형식과 딱 들어맞는다)은 지금 우리에게 곰곰이 짚어 볼 만한 시다.

당장 내일 귀국하자마자 사표 수리든 유임이든 총리 골프 파문을 매듭지어야 할 노 대통령이 부끄럽지만 이웃 지도자의 율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후진타오의 '8대 영광 8대 수치'율시 중에 무려 7가지'수치'구절이 이 총리에게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골프 파문으로 정쟁 소모와 민심을 소란케 했으니'위해조국(危害祖國=나라에 해를 끼치는 것)'구절에 해당됨이 그 첫째요, 그린피(골프 비용)를 남에게 내게 했으니'손인이기(損人利己=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구절에 해당됨이 그 둘째며, 경기 규정 무시하고 황제골프를 쳤으니'위법난기(違法亂記=법과 규율을 어기는 것)'했음이 세 번째요, 남들 일하는 파업 날 공을 쳤으니'호일오로(好逸惡勞=놀기만 좋아하고 일하는 것을 꺼림)'에 해당됨이 넷째요, 먹고 살기 힘든 백성 앞에서 수십만원 내기 골프나 하며 민심을 외면했으니'배리인민(背離人民=봉사 않고 민심과 갈라 떨어짐)'이 다섯째요, 업자들 돈으로 즐기며 사적모임(27회)을 만들고 어울렸으니'견리망의(見利忘義=공복의 의무를 잊고 사적인 이익을 좇음)'가 그 여섯째요, 산불'수해'파업 때마다 정무에 각고치 않고 놀이에 빠졌으니'교사음일(驕奢淫逸=각고 분투 않고 사치에 빠짐)'의 의심을 받았음이 일곱 번째의 수치라 할 수 있다.

천자문 역시 재상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성궁기계(省躬譏誡) 총증항극(寵增抗極)이란 구절이 나온다. '자신의 몸을 살피고 경계하며 임금의 총애가 더할수록 마지막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 총애를 받아 온 이 총리에게 딱 맞는 말이다. 하룻밤 새 옥중에서 천자문을 완성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 버린 주흥사.

그의 흰머리 때문에 천자문을 일명 백두문(白頭文)이라고도 부른다는 일화에서 공직자의 혼을 배우게 된다. 이 총리가 오늘이라도 물러난다면 해임 스트레스를 풀러 또 골프장에 갈지 천자문 읽으러 책방으로 갈지는 그 또한 그의 혼의 질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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