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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중국, 제1차 천안문사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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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톈안먼(天安門) 사태'라 하면 1989년 6월 4일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6년 4월 5일에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은 인민들이 흘린 선혈로 가득찬 적이 있었다.

둘을 구분하기 위해 76년의 비극은 '제1차 천안문사태'라고 부른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날은 쌀쌀한 가운데 이날 톈안먼 광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의 군중들로 분주했다. 이들은 같은 해 1월 8일 숨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추모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저우언라이 총리를 반대하는 자는 모두 타도하라!"고 외쳤다.

그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4인방'을 비롯한 극좌파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상 절대화와 극좌체제는 개혁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열망을 거스르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이날 밤 곤봉과 혁대를 손에 쥔 민병 1만 명과 경찰 3천 명, 인민해방군이 단행한 무력진압으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날 사태 이후 실각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1989년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만이 전해질 뿐. ▲1901년 시인 이상화 출생 ▲1995년 통상산업부 '석탄산업 종합추진계획' 발표.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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