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돈(朴在敦·70) (주)한국파마 회장은 한평생을 약(藥)과 함께 한 외곬 인생이다. 대학에서 약학을 배운 뒤 제약회사를 다녔고, 약국도 운영했으며, 창업까지 했다. 부인도 약사다. 그렇게 살아온 게 51년째다.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도 맡고 있으며 이전에는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부나 관련 단체 등으로부터 상도 많이 받았다. 지난해 상공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수상했다.그렇다고 남다른 재능이나 소질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약사 면허증만 있으면 평생 잘 살 수 있다."는 집안 어른들 설득에 떠밀려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겸손해 한다.
원래 꿈은 공학도. 중·고교 때 과학을 가장 잘했고 당연히 공과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했다가 어느날 갑자기 진로가 바뀐 것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아스피린 하나 입에 대본 적도, 병원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었을 정도로 약이 뭔지를 몰랐다."고 한다.
1936년 창녕에서 10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으나 4살 때 가족들과 함께 대구로 이사왔다.대구초등학교와 경북중·고를 거쳐 59년 영남대 약대 1기생으로 졸업한 직후 서울의 유명 제약회사에 취직했다.
6개월 후 부산지점으로 발령받았던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곳에서 결혼을 했고 뜻을 세웠던 것이다.
병원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가 모 대학병원 약사로 있던 이귀자(67·이화여대 약대 졸업) 씨를 만나 1963년 결혼했으며 부인은 약국을 개업했다. "이 길로 들어선 김에 인생의 승부를 걸고 싶었고, 그래서 아내도 약사를 찾게 됐다."고 한다. 약국 이름은 자신이 자랐던 대구 남산동에서 따와 '남산 약국'이라고 했다.
2년 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부부가 함께 약국을 운영했다. 4평 남짓했던 약국은 규모가 날로 커져 부산에서 손가락 꼽힐 정도가 됐다고 한다.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직접 제약회사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1974년 부산에 있던 제약회사를 인수한 뒤 (주)한국파마를 창업, 연고지인 대구와 부산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의약품 판매시장을 구축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본들 지방에서 만들었다고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아 서울로 올라가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렵게 일군 재산을 날릴 수 있다."며 가족들은 한사코 반대했으나 혼자 서울로 가 한국파마를 재창업했으며 결국, 성공했다. 연 매출액 300억 원 규모로 일본, 중동, 동남아 등지로 수출도 한다. 1999년에는 예순이 넘은 나이로 의약품 등을 멸균처리하는 벤처회사인 (주)소야도 창업했다.박 회장은 "이제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건강이 유지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