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대구대 교환학생으로 온 지 1개월째. 뜻밖의 한국여행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목적지가 한국에서도 이름난 사찰인 해인사라니 더 기쁘다. 아직은 한국생활에 적응하기도 바쁜 시기. 하지만 모처럼 한국 봄날의 여유를 만끽하며 매일신문 주말팀과 경남 합천 해인사로 떠났다.
떠나기 전 이른 점심부터 해결했다. 장소는 대구시내의 한 숯불갈비 식당.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들러보는 식당이다. 상추에 쌈을 싸 먹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어설프지만 따라해봤다. 먼저 살짝 구운 고기를 상추에 얹고 쌈장을 숟가락에 떠서 조금 넣고 야채, 김치 등을 싼 후 입에 넣었다. 한입 가득 씹히는 고소한 맛이 특별했다. 카자흐스탄에선 주로 말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다. 별다른 반찬도 없이 소금에 찍어먹기 때문에 맛이 단조로운 편인데 이렇게 쌈을 싸서 먹는 게 훨씬 고기 맛이 낫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경북 고령군을 지나 경남 합천군으로 가는 길은 봄꽃이 활짝 피었다. 하얀 벚꽃과 붉은 진달래가 멀리서 온 이방인을 반기는 듯했다.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이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였다. 계곡 전체가 사찰이다. 웅장한 규모에 놀랐고 아름다운 경치에 또 한번 놀랐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 물흐르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 자리잡은 조용한 암자들이 산 전체의 정기를 받아 수도하기에도 딱 좋은 장소였다.
특히 사명대사가 입적한 홍제암(弘濟庵) 안에 들어가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문득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려인이라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나에게 한국의 불교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인사를 둘러보다 한국인들이 국보 제32호라고 자랑하는 팔만대장경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대장경은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 두 개 동에 걸쳐 있는 엄청난 경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게 더 경이로웠다.
마침 이날은 팔만대장경 반야심경판을 꺼내 머리에 이고 사찰내를 한 바퀴 돌며 바람을 쐬는 '제46회 팔만대장경 수호 정대불사' 행사가 열렸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불자들의 행렬이 신기하다.
이 모든 행사를 설명해주는 스님도 너무 친절하고 인상도 좋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불교용어가 많아 영어로 번역해도 그 뜻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스님으로부터 두 손을 모으고 살짝 미소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불교식 인사법도 배웠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불교 인사법으로 주고받으니 세상에 이런 평화는 없는 것 같다.
해인사 암자 곳곳을 둘러보고 마음을 수양한 뒤 돌아오는 길에 야생화 생태식물원에도 들렀다. 경북 성주군 가야산 백운동 집단시설지구 내에 있는 식물원은 전시실 300평, 온실 300평 등 엄청난 규모였다. 할미꽃, 금낭화, 붓꽃 등 450여 종의 야생화가 관광객들을 반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직 개장(오는 6월 말 예정)은 하지 않아 일반 관광객들을 받지않았다. 천천히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테마 전시실을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카자흐스탄에서 벤치마킹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역시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진달래를 보며 한국인들이 왜 자기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엘레나 텐(Yelena Ten·21·대구대 한국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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