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문을 찾아서] 지조론(志操論)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서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자시를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서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 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 선생도 지조 때문에 여러 기벽의 일화를 낳았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들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 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의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야당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마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어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의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곤욕(困辱) : 심한 모욕.

▷자존자시(自存自恃) :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능력을 믿음.

▷기벽(奇癖) : 남과 다른 특이한 버릇

▷신단재(申丹齋) : 단재 신채호

▷채근담(採根譚) :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쓴 어록. 동양적 인간학을 말하고 있다.

▷교지(敎旨) : 간사한 지혜.

▷욕인(辱人) : 다른 사람을 욕되게 함.

▷개과천선(改過遷善) :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됨.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국문학자. 본명은 동탁. 경북 영양 출생.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고풍의상', '승무' 등으로 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1046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시집 을 간행해 '청록파'라 불렸다.

좋은 글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 본연의 의식을 일깨운다. 수천 년 전의 고전이 오늘 다시 읽히고, 내일에도 읽힐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누렇게 바랜 책 속에서 희한하게도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조지훈 선생이 1962년 이 글을 쓰면서 '선비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던 지조나 '백주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며 개탄한 변절의 의미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오히려 그 때보다 오늘에 더욱 빛을 발하는 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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