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지난 1982년부터 25년간 부처님 오신 날(올해는 5월 5일) 이외는 절대 산문을 열지 않는 이 땅의 마지막 청정 수행도량. 1년 내내 일반인은 물론 신자들의 발길까지 금지시킨 조계종 특별선원.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 지증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백두대간 길인 문경 희양산 자락에 있다. 하지만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걷기 위해 아직도 수행자들이 희양산 양쪽의 산문을 막고 수행환경을 지켜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마침내 봉암사가 제한적으로 산문을 열었다. 29일부터 열리는 '2006 문경 한국전통 찻사발축제'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육법공양 헌다례' 행사 때문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봉암사에서 백운대까지를 둘러봤다.
석탄박물관을 지나 용추계곡 방향으로 향하다 봉암사 표지판을 보고 고개를 들면 마이산 마냥 우뚝 선 바위산을 볼 수 있다. 희양산이다. 예사롭지 않은 바위산을 향해 가다 보면 도로변 곳곳에 '이곳은 청정수행 도량이므로 등산객의 입산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있다. 출입을 막는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비포장의 호젓한 길이다.
사찰은 25년간이나 숨겨온 것 치고는 생각보다 현대적이다. 하긴 전국에서 단 한 곳만이라도 수행에 전념할 곳이니 거기에 맞는 건물이기만 하면 될 듯하다.
경내는 조용하다. 30여 명의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는 곳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다. 차라리 숙연함이 느껴진다. 다들 행사준비로 백운대로 올라간 뒤 경내를 돌아봤다. 봉암사 삼층석탑과 지증대사부도, 지증대사비 등이 볼거리. 행여 참선 스님들께 누가 될까봐 서둘러 백운대로 향한다.
절에서 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두 갈래. 이왕 1년에 초파일 하루만 올 수 있는 곳 아닌가. 큰 길을 두고 절 앞쪽의 다리를 건너 산길을 택했다. 백운대에 이르는 300여m 산길 내내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다는데 산길은 의외로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많다. 참선하는 스님들이 틈 날 때마다 백운대 마애불까지 다녀오기 때문이란다. 하긴 콸콸 쏟아져내리는 물소리에 귀뿐 아니라 마음까지 씻어낼 판인데 깨달음을 얻지 않을 수 있으랴 싶기도 하다.
백운대는 꽤 너른 바위다. 흘러내리는 물소리만큼 물빛도 맑다. 널찍한 바위 중간쯤 조금 튀어나온 부분에 앉았다. 이곳을 두드리면 희한하게도 목탁소리가 난다. 백운대 왼쪽 바위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아무나 다가설 수 없는 곳에서 25년간이나 홀로 참선하는 스님들을 지켜보고 있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