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생활고…. 깨어지는 가정이 수없이 많다. 이 가정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이웃들이 답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돌보겠다."고.
'보육원'으로 불리는 아동생활시설로 가는 아이들이 줄고 이웃의 아이를 대신 키워주는 '가정위탁'이 급증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등 갈 곳 없어 움츠리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이웃들이 만들어내고 있다. 5월의 햇살만큼이나 세상이 밝고 아름답다.
◆내 이웃을 내 가족처럼
수진(15·여·가명)이는 이모(51·대구 동구) 씨 집에 맡겨진 위탁아동. 친부모는 수진이가 4살 때 이혼했고 아이는 아빠와 할머니, 외갓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아빠 방치가 일상이 됐던 아이는 지난해 10월 이 씨 집으로 오게 됐다. 제멋대로였던 수진이도 이 씨 집으로 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교 4학년 때부터 단 한번도 꼴찌를 놓쳐 본 적 없는 아이가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것. 이제는 반에서 20등 이내로 들었다.
이 씨는 "위탁가정은 내버려두면 천덕꾸러기가 됐을 아이들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라며 "위기에 처한 친가정이 회복될 때까지 맡아 기름으로써 친가정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가정위탁은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가정의 틀속에서 보호, 양육하는 제도. 친부모 이혼이나 행방불명, 사망, 이들의 학대·방임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친가정이 정상을 찾을 때까지 돌봐주는 것.
강모(48) 씨도 지난 1월 5살 난 아들 진수(가명)를 얻었다. 진수 아빠는 이혼 후 행방을 감췄고 엄마는 백혈병으로 3년간 고생하다 지난해 결국 숨을 거뒀다. 진수는 할머니(55) 손에 맡겨졌다가 강 씨 가정으로 맡겨졌고 이후 달라졌다. 사람들을 흘겨보거나 괴팍스럽게 반응하던 습관도 없어졌다. 어른들 욕설을 따라하던 버릇도 고쳤다. 심각했던 피부 알레르기도 거의 나았다. 강 씨는 "진수가 온 후 적막했던 집에 생기가 돈다."고 밝은 표정이었다.
오갈데 없는 지희(9·여·가명)를 기르겠다고 나선 건 김모(38) 씨 가족. 지희의 아빠는 이혼 후 행방불명된 상태. 엄마는 지난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인 태어난 지 8개월째부터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때문에 지희는 엄마 얼굴조차 기억 못한다고 했다.
김 씨는 "언젠가는 돌아갈 아이지만 같이 사는 동안에는 친자식이나 다름없다."며 "친 아버지가 나타나 데려가도 좋지만 안 데려가면 더 좋다."고 했다. 이처럼 일반가정에서 위탁 아동으로 자라는 아이는 대구에만 46명. 2003년 4명에 불과했던 것이 3년만에 10배 넘게 늘어났다.
◆이웃들이 보듬는다= 지난 4일 오후 대구 서구 비산7동 '꿈이 있는 집'. 30여 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색깔 찰흙을 조물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꽃과 달팽이, 아기곰 등 서툰 솜씨로 빚어낸 '작품' 들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낄낄거렸다. 이들 대부분은 편부모이거나 양친이 있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
지난 2003년 4월 문을 연 이 곳은 학교를 마치면 오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다. 과거 민간에서 운영하던 '공부방'이 제도화된 것.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이웃들이 보듬고 있다.
툭하면 폐지를 모아 생활하는 할머니를 찾아와 행패 부리는 아빠 탓에 어린 나이에 원형 탈모증에 걸린 아이, 알코올 중독의 아빠는 지난해 숨졌고 엄마는 행방을 감춘 지 오래인 초교 4학년, 6학년 자매도 있다.
백혈병에 걸린 아빠와 병수발에 매달리는 엄마 사이에서 갈곳 잃은 형제, 엄마·아빠가 모두 종적을 감추고 아이들만 남은 남매. 이들의 유일한 쉼터가 이 곳.
아이들은 이 곳에서 방과 후부터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낸다. 국어, 수학 등 교과학습과 숙제지도, 현장학습, 김밥만들기, 오카리나 연주, 천연염색 등 다양한 체험기회도 얻고 있다. 아이들이 식사를 거르지 않고 거리를 헤매지 않는 것은 이 곳 덕분.
하지만 한달 800만 원 넘는 운영비는 힘겹기만 하다. 월 200만 원의 정부보조금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한푼 두푼 내 가족 대하듯 후원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할 판.
신혁수 전국 지역아동센터 협의회 대구·경북지부장은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을 위한 민간 운동이 성공하려면 이웃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며 "중앙 및 지방정부가 아이들 살리려는 운동에 동참해줘야 한다."고 바랐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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