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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을 찾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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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은 생전에 이곳 경주로 통하는 동해 어귀에 절을 짓고 싶어했으나 680년 세상을 떠나게 되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 신문왕은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681)에 완공하고는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하였다. 신문왕은 문무대왕이 죽어 용이 되어 여기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감은사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놓은 것이 지금 감은사터 초석에서도 볼 수 있다.

감은사의 가람배치는 정연한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으로 모든 군더더기 장식은 배제하였다. 이것은 이후 불국사에서도 볼 수 있는 가람배치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또 여기에 세워진 한 쌍의 삼층석탑, 이 감은사탑은 이후 통일신라에 유행하는 삼층석탑의 시원(始原)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것의 조형적 발전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되새길 때 흔히는 완성된 결실에서 그 가치를 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술문화를 얘기할 때면 그 문화의 전성기 유물을 중심으로 논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전성기양식 못지않게 시원양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전성기 시대의 전형을 파괴하는 양식적 도전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전성기양식은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시원양식의 웅장한 힘은 갖추지 못하며, 말기의 도전적 양식이 갖고 있는 파격과 변형의 맛을 지닐 수 없다. 그 모든 과정은 오직 그 시대 문화적 기류와 취미의 변화를 의미할 따름인 것이다. 그렇게 인식할 때 우리는 문화와 역사의 역동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리스 고전미술에서 전기 고전주의의 정중한 피디아스조각과 후기(전성기) 고전주의의 매끄럽게 빛나는 프락시텔레스의 조각, 헬레니즘시대의 다양성을 상호비교해도 그렇고, 세종 때 만든 훈민정음의 글씨체가 정조 때 만든 '오륜행실도'의 글씨보다 엄정한 기품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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