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5년간 동산의료원장으로 '인술' 편 하워드 마펫 박사

최근 대구 중구 동산의료원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시절, 동산의료원의 도움으로 병마를 이겨낸 안영상(68·서울) 씨가 보낸 4장짜리 감사의 글이었다.

"1954년 척수골수염을 앓다 고향 합천에서 무작정 대구로 나왔죠. 동산병원을 찾아 살려달라고 졸랐더니 간단한 치료 후 병원장실로 안내하더군요. 그곳엔 키 큰 외국인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의료진과 몇 마디 말씀을 나눈 뒤 돈도 받지 않고 입원시켜주셨어요."

3년여에 걸친 입원 생활 끝에 안 씨의 척수골수염은 완치됐다. 물론 안 씨는 퇴원할 때까지 '공짜 환자'였다.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었다. 망설인 끝에 결국 편지를 띄우게 된 것.

안 씨는"당시엔 형편이 어려워 도움을 받는 이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그 분이 나를 지금까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생 그 때 일을 잊어본 적이 없다."며"바쁜 생업 때문에 대구를 찾아 그 분을 당장 찾아뵙진 못하지만, 대구에 들를 일이 있으면 그 분이 사시던 사택 앞에 꽃다발이라도 올리겠다."고 했다.

안 씨의 목숨을 구해줬던 파란 눈의 외국인. 동산의료원 7대 원장(1949~1994년)을 지낸 뒤 미국으로 떠났던 하워드 마펫(88·Howard F. Moffett) 박사 얘기다. 그가 지난 6일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숭실대와 장로회 신학대를 설립한 자신의 아버지 고 사무엘 마펫(Samuel A. Moffett) 선교사의 묘소를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이장하려고 나선 길. 어머니 고향이자 마펫 박사가 여생을 보내고 있는 미 캘리포니아 주 카핀테리아(Capinteria)에 있던 아버지 묘소는 지난 9일 서울의 장로회 신학대 교정에 자리 잡았다.

평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다 미국으로 돌아갔던 그는 의료 선교사가 돼 한국으로 다시 왔고 대구에 정착했다. 그 때가 1948년. 열악한 대구의 병원환경은 한국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더욱 악화됐다. 전쟁은 끝났지만 거리엔 고아가 넘쳐났고 사람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수많은 전쟁고아들, 집 잃은 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무료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소아병동은 고아원 아이들 전용 자선병동이 되다시피 했고요."

제대로 받지 못한 진료비와 병원시설 확충 비용은 해외모금을 통해 충당했다. 마펫 박사는 미국과 유럽 교회와 구호기관에 수없이 편지를 띄워 지원을 호소했고 수시로 미국을 드나들며 모금활동을 벌였다.

피고름이 묻은 환자복, 침대시트 등을 손빨래해 나뭇가지에 널어야 했고 비라도 오면 수술 중인 의사 외에 병원 전 직원이 달려들어 빨랫감을 걷어야 했던 환경도 조금씩 나아졌다. 현재 동산의료원 건물 대부분은 마펫 박사의 노력 덕분에 지어진 것들일 정도로 마펫 박사는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아깝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할 따름이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마펫 박사. 소원도 남북통일일 정도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파견 해군 군의관으로 참전했죠. 아군이 북진할 때 평양에 가본 뒤 다시는 고향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도 실향민인 셈이에요. 하루 빨리 남북통일이 돼 실향민들의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마펫 박사는 지인들을 만난 뒤 19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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