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명품

한 번 높아진 생활의 격(格)을 다시 낮춘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형 고급차를 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차로 바꾸는 걸 보기 어렵고, 넓고 화려한 아파트에서 살던 사람이 소박한 서민 아파트로 옮기는 것도 보기 힘들다. 고도의 문명사회에서 살던 사람이 문명의 편리함을 포기한 생활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명품(名品)'도 그렇다. 고가의 명품,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아하!' 탄성이 쏟아질 만한 해외 브랜드 상품을 고집하는 '명품족'들에겐 평범한 국산 브랜드 따위는 공짜로 준다 해도 관심 밖이다. '소비의 희소성','남들과의 확실한 차별화'라는 만족감, 그리고 명품과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탓이다. 이 때문에 "중고라도 명품"을 고집하는 중고명품족도 늘어나나 하면 병적인 명품중독자들도 늘고 있다.

○…박성범 국회의원과 부인 신은경 씨를 둘러싼 공천 헌금 비리 의혹이 커져가는 가운데 신 씨가 받았다는 명품이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성낙합 전 서울중구청장의 인척 장모 씨로부터 받았다는 세칭 '명품 8종 세트' 밍크털 장식의 로베르토 카발리 코트, 샤넬 핸드백, 루이 13세 코냑, 세이블 캐시미어 숄 등으로 가격으로 치면 모두 1천424만 원어치라 한다.

○…하루하루 살기 빠듯한 사람들에겐 "이기 다 뭣꼬?"할 만한 낯선 이름들이다. 이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650만 원 상당의 '로베르토 카발리'코트. 명품을 좀 안다는 사람에게도 낯선 이름인 로베르토 카발리는 이탈리아의 현역 패션 디자이너로 동물 무늬 등 이국적이고 화려한 원단에 몸매를 드러내는 실크 드레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섹스 심벌인 할리우드 스타 샤론 스톤과 역시 섹시한 매력의 미국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등이 즐겨 입는 브랜드라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 이후 박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위스키 시바스 리갈이 크게 유행세를 탔다. 그전까지만 해도 듣도 보도 못했던 이름의 양주가 그 사건 이후 온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술이 됐다. 호기심 많은 우리 국민들, 이번엔 로베르토 카발리 의상에 뜨거운 관심이 쏠릴 판이다. 하지만 한두 잔 맛볼 수 있었던 시바스 리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가라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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