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들 드세요. 저기~아주머니, 이분들 먹은 음식값 반만 받으세요." "장관님이 사주시죠?" "제가 산 거 드시면 이분들이 나중에 50배 과태료를 물어야 해요." 시장통 좌판 앞 시민들이 박장대소했다. 이 후보는 연신 웃으면서도 손을 쉬지 않았다.
이 후보는 "원래 잔치국수를 좋아해요."라고 했지만, 속내는 따로 있는 듯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까웠던 것. "발품을 팔고 난 뒤 먹는 국수는 꿀맛"이라며 5분 만에 한 그릇을 비운 뒤 다시 선거운동에 나섰다.
퇴근시간대인 오후 6시. 반월당네거리 한 모퉁이에 유세용 차량을 세워두고 퇴근길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운이 좋으면 신호대기하는 차량 운전자들에게 몇 마디 건넬 수도 있었다.
밤 9시가 돼서야 선거캠프로 돌아온 이후보는 잠시 참모들과 회의를 한 뒤 다시 10시로 예정된 개인연설 녹음을 위해 방송국으로 출발했다. 재녹음을 반복한 뒤 결국 11시가 넘어서야 공식 선거일정 첫날을 마칠 수 있었다.
민선 구청장으로 나선지 10년 만에 '시민후보'를 자청하며 다시 이재용 후보가 돌아왔다. 4년 전 38.9%란 득표율을 올리고도 현 조해녕 대구시장에게 고배를 마신 이 후보가 환경부 장관직을 내팽개치고 재도전에 나선 것.
그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았다. 손을 맞잡은 시민들은 "남구청장 시절부터 팬"이라고 환한 미소를 보냈고, 남구에서는 "이재용! 이재용!"하며 일부 연호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구청장님 아니세요?" "이번엔 꼭 이겨야 합니데이." 길거리에 나온 시민들 중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서문시장 상인들도 '젤 낫다' '장관님, 화이팅' '서민들 묵고살게 해 주이소'라고 격려와 지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후보는 하루 종일 강행군을 벌이고도 "머슴되려고 장관자리 버리고 내려왔는데 이 정도가 대수겠느냐?"고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다른 속내를 내보이기도 했다. "후보는 좋은데, 정당이 좀…."하고 말꼬리를 흘렸다. 또다른 시민은 "워낙 한나라당 정서가 강해 인물만 가지고 당선이 되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집권여당의 힘'과 '인물론'이 지역 한나라당 정서의 높은 장벽을 허물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았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누구라꼬예? 김범일이라꼬예?"
18일 오후 2시 30분 대구 서문시장 입구. 명함을 주며 말을 건네자 상인들은 신기한 듯 김 후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죽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집을 나서 하루 종일 발품 팔며 돌아다닌 지가 벌써 석 달 남짓. 지칠 때도 됐지만 시민들을 만날 땐 항상 웃는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운다. 칭찬이든 따끔한 충고든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서다.
선거운동 첫 날인 18일.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선 김 후보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신천변의 작은 공터.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반갑습니다. 대구시장 한나라당 후보 김범일입니다." 일일이 다가가 눈도장을 찍고 명함을 건네면 이제는 얼굴을 알아보고 답사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열심히 하세요, 파이팅." 되돌아오는 한마디에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의 피로는 금세 사라진다.
새벽 및 출근길 선거운동을 끝낸 오전 9시. 선거본부 출정식을 위해 모든 사무원들이 선거본부 앞에 모였다. 로고송인 장윤정의 '짠짜라'가 울려 퍼지고 20대 젊은 사무원들의 환호가 터지자 김 후보는 얼른 무대 앞으로 나와 인사 대신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젊은이들이 환호해 주니 나도 모르게 그만…. 하하." 정치초보라고 여러 번 강조하던 자신의 말과 다르게 노련한 김 후보의 애드리브는 언제나 선거 사무원들의 기운을 돋운다.
이날은 후보 간 정책토론회와 서문시장과 동성로 등지 시내 곳곳을 돌며 인사를 해야 하는 날이다. 새벽부터 뛰어도 밤 10시나 되어야 끝난다. 매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김 후보의 걸음은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빨라졌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니 화장실에 갈 일도 없다. 토론회가 끝나니 어느새 오후 1시 반. 1분 1초를 쪼개 쓰다 보니 점심은 주로 잔치국수나 간편한 국밥 종류로 때운다. "처음엔 배도 들어가고 살도 3kg 정도 빠져 다이어트 좀 하나 했더니 이젠 이 생활에 적응돼 변동이 없어요."
그가 숨을 돌릴 시간은 이동용 차량에 탔을 때. 차에 타자마자 구두를 벗으면 여성용 스타킹처럼 발이 훤히 비치는 양말을 신은 발이 눈에 띈다. 뛰어야 할 곳이 많은데 발에 땀이 많아 통풍이 잘 되는 특수양말로 손수 구입했다.
또 하나 그의 휴식시간에 빠질 수 없는 건 담배 한 대와 자일리톨껌. "담배를 줄이려 했는데 선거라는 게 1등만이 살아남는 시스템이라 중압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누가 봐도 베테랑 정치인으로 보이는 김 후보지만 선거가 주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돼 유세차량과 사무원들이 함께 있으니 신이 나 힘든지 모르겠다는 김 후보. 아직 정치는 초보라 모르는 게 많다며 "그냥 앞만 보고 달리겠다."며 주먹을 쥐어 보인다.
인파가 줄어든 밤 10시. 첫 날의 일정을 무사히 끝낸 김 후보는 다음날 있을 토론회와 방송 연설 준비를 위해 다시 선거사무소로 발길을 돌린다.
"시장 되시면 우선 경제부터 챙겨주세요."
김범일 한나라당 후보의 인사를 받는 시민들은 한결같이 경제 살리기를 주문했다. 그만큼 한나라당과 김 후보에 대한 기대가 큰 듯 했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등 정부부처 요직과 산림청장 등을 거친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란 점이 김 후보에 대한 지지로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다 대구시정을 이끌 '무난한 후보'라는 평이 더해져 시민들 반응에는 기대감이 배여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경제 불황을 겪어온 대구 민심의 갈등 폭은 여전히 크다. "대구는 전통적으로 끌어온 사람들이 계속 끌어야 한다."는 쪽에 맞서 "이제는 좀 바뀔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쪽도 만만찮을 듯했다. 유세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대구가 바뀌려면 당만 보고 무조건 찍던 인식도 바뀌고 정치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싸우지 좀 마세요." 여학생들이 깔깔거리며 김 후보에게 농담을 건네는 모습도 보였다. 민심이 이러니 치열한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한 김범일 후보에게도 대구 표심을 잡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한나라당에 표는 주겠지만, 마냥 좋아서 찍는 것만은 아닙니다."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는 시민의 말에는 한나라당 김 후보에 대한 대구의 기대와 바램이 그대로 농축돼 있는 듯 해보였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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