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축구팬이라면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뛰었던 나이지리아의 줄리어스 아가호아를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넣은 골 보다 득점후의 인상적인 세리머니로 많이 기억되며 무려 일곱바퀴를 도는 덤블링으로 골을 넣은 기쁨을 표현했다. 이 세리머니 하나로 그는 월드컵에서 카메룬의 로저 밀러 만큼 활약을 하진 못했지만 그 정도의 지명도를 지닌 선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원초적인 생명력을 내뿜는 축구장은 비탄과 환희, 때로는 광란의 몸짓이 어우러지는 무대인데 월드컵대회에선 특히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축구 선수의 득점 세리머니도 그 중 하나이다.
최근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평가전에서 스위스의 다니엘 기각스는 우아하고 강렬한 동작으로 동점골을 터뜨린 후 발레 공연의 피날레, 혹은 투우사가 투우를 쓰러뜨린 뒤 관중에게 보내는 감사의 인사와 같은 세리머니를 펼쳤다. 기각스는 자신의 득점이 발레리나의 몸짓처럼 멋졌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월드컵 무대에선 다양한 골 만큼이나 다양한 골 세리머니가 관중들과 교감해왔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베베토가 선보인 '아이 어르기' 세리머니는 경쾌하게 터진 골처럼 가볍고 즐거웠다. 미국 월드컵에서 많은 득점 기회를 놓쳐 비난받던 황선홍은 0대3으로 뒤지던 독일전에서 만회골을 넣은 후 주먹과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는 몸짓을 취했는데 그건 세리머니라기 보다는 자신에 대한 자책, 경기 내용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 몸짓이었다.
스페인의 라울 곤잘레스와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박지성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듯한 세리머니도 잘 알려져 있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과 맞붙었던 비에리는 선제골을 넣은 후 열렬히 응원하던 한국 관중들에게 득의만면한 채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듯 했고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은 박지성은 다른 의미로 '조용히 하고 골을 넣은 날 주목해 줘'라는 의미를 전달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골을 넣은 후 다함께 코너의 깃발로 다가가 추는 춤 세리머니는 흥겹고 아일랜드의 로비 킨이 덤블링을 한 후 활쏘는 동작을 하는 세리머니도 기쁨을 나타낸다.
의식적인 세리머니와 달리 부지불식간에 터져나오는 원초적 환희의 세리머니도 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한국 감독은 한국이 골을 넣을 때마다 강렬한 어퍼컷으로 허공을 휘저었고 이탈리아전의 동점골로 히딩크가 어퍼컷을 내지르게 한 설기현은 그라운드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마르코 타르델리는 서독의 골문에 중거리슛을 터뜨린 후 믿기지 않아 경악한 듯한 표정으로 주먹 쥔 양 팔을 벌리고 고개를 흔들며 포효했는데 월드컵사에 남아있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
독일월드컵에서 열광할 준비가 돼 있는 세계의 축구팬들은 골과 함께 멋지고 새로운 세리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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