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장, 국무총리를 거쳐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올랐다가 홀연히 정계를 떠나 새마을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이수성(이수성.69)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만났다. 정원이 잘 가꾸어진 2층 양옥으로 전망이 꽤 좋았다. 빼곡한 일정에다 마침 두 시간 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만찬 약속이 있어 인터뷰를 서둘렀다.
◆중국이 배우는 새마을운동=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월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 운동' 대토론회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주목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의 소득을 증대한 한국의 경험을 중국 농촌에 접목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이 회장과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장을 만난 중국 고위층은 새마을운동의 전수를 부탁했고, 중국 각지의 지도자 3만여 명이 3년 동안 교대로 한국에서 연수를 하기로 결정해 지난달부터 연수가 시작됐다. 중국 사회운동에도 한류바람이 불기 시작한 셈이다.
중국 중앙정부와 각 성과 도시는 그간 수시로 이 회장을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아시아 국가간 협력과 교류를 통한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아오포럼(Boao Forum for Asia) 한국 대표로 이 회장을 낙점, 자주 중국에 오도록 했다. 아시아 각국의 전직 대통령과 수상, 국회의장이 포럼의 멤버다.
이 회장은 "중국의 지도자 3만 명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게되면 우리나라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교류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관변단체란 좋은 것=이 회장은 '관변단체'를 예찬했다. 정부를 신뢰하고 존경하지 않으니 정부 유관단체도 같이 싫어하는 것이라며 "내 나라 정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3년여 전 새마을중앙회장이 되었을 때 일화가 있다. 회장 자격으로 국회에 갔더니 몇몇 의원들이 총리까지 한 분으로 격에 맞지 않다고 한 것. 이에 이 회장이 "새마을운동 같은 봉사하는 단체는 전직 대통령 가운데 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분이 해야 할 자리"라고 하니 아무 말 못하더라는 것이다.
◆지역감정 만든 사람은 역사적 죄인=시국과 정치 얘기로 넘어갔다. 이 회장은 특히 애국심을 강조했다. "애국심이 없으면 나라가 갈 데가 없어요. 미국과 일본은 세계화를 말하면서 무서울 정도로 민족과 국가를 중시해요. 다른 민족에 해가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죠. 이런데 우리는 애국심이 실종되고 부모 자식간, 스승과 제자간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으니 큰 일 입니다."
그러면서 로마시대 정치철학자 리비우스의 말을 떠올렸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경멸하면서 모르는 사이 닮아 가고 있다. 로마는 곧 망한다." 실제 리비우스가 그 말을 하고 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로마가 망했다. 우리나라가 현재 그런 위기에 있다는 거다. 많이 배우고, 돈 많고, 지위 높고, 권력가와 정치인 등 신문에 나는 사람들이 먼저 각성해 사회에 맑은 물을 흘려보내야 하는데 탁류만 흘리고 있다는 것. 특히 경상도는 어떻고 전라도는 어떻고 하는 것을 보면 꼭 조선조 이후 4색당파가 싸우던 그 때와 닮은 꼴이라며 도대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누가 만들었나요. 그 사람들 역사적 죄인입니다."
이 회장은 새마을운동 정신인 근면 자조 협동 가운데 협동을 첫 번째로 친다. 협동 정신의 바탕에 높은 도덕성과 효(孝)와 충(忠)이 깔려 있다는 것. 타고르가 노래하고 토인비가 높이 평가한 도덕성과 예절을 우리 스스로 버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협동으로 나라의 정신을 다시 세우고, 분열정치를 치유하고 싶어 한다.
◆변절자들이 날 뛸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 회장은 정치적 회한이 있다. 지난 1997년 이전 이회창씨와 신한국당 후보를 놓고 경쟁을 하다가 중도 하차한 것과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칠곡에 민국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마한 것이 그것.
그러나 정작 그는 실패하고 난 뒤 기분 좋았다고 한다.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신한국당 대선 후보가 안된 것에 미련이 없고, 주변의 권유로 억지로 나선 총선에서 떨어졌지만 고향 주민들이 자신에게 2만 표 이상 표를 준 사실이 고맙다는 얘기다.
마음이 비어 있기에 자신을 밀어주지 않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다. "YS는 아랫사람 말을 안듣는 척하면서 진지하게 들어줬고, 어려운 순간 순간 총리의 결정을 존중해줬어요. 또 아주 정직하고 염결성(廉潔性)이 있어 돈 한 푼 안받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켰잖아요. 지금도 여전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경쟁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정치 풍토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 톤이 높아졌다. "우리 정치 풍토에서 더러운 것은 변절자들이 날 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 단 하나 뿐일 것입니다. 이런 변절자들이 발붙이지 못할 정도로 국민의식이 성숙돼야 우리 정치가 발전합니다."
◆좋은 정치세력 있으면 협력하겠다=한나라당이 싹쓸이 한 5·31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참 조심스럽다."며 운을 뗏다. 그는 "국민들이 어떤 당을 지지한다 싫어한다가 아니라 사상적 편향성이 있어서 안되고, 잘난 체하고 독선적이서 안된다는 국민의 마음이 표출된 것"이라며 "어떤 측면에서는 긍정적이고 다행스럽다."고 했다.
참여정부의 국정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른바 386세대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국정 운영에 관여하게 되면 편견이 없어져야 하는데 똑같이 국민을 갈라 내편 네편하고 있습니다. 순연한 애국심이 없어서 그래요."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그는 울타리론을 폈다. 정치를 끝냈지만 국민의 은혜를 갚기 위해 좋은 세력이 있다면 적극 협력할 생각이라는 것. 국립대학 교수와 총리 등 세금을 쓰며 살아 국민의 은혜가 부모 은혜 다음 쯤은 되므로 좋은 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돕는 것이 국민은혜에 대한 보은이라는 설명이다. "노(老)시민으로서 원하는 것은 계층적 지역적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시키는 '세력'이 우리나라를 이끌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영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대구·경북에 대해 그는 "지금 어렵지만 잘 극복하고, 우리나라 발전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며 "대구·경북은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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