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어머니(62)와 헤어진 아내에게 호강 한번 제대로 못 시켜줬어요. 특히 몸이 성치 않은 지현(8·여)이에겐 더 미안합니다. 명색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무 것도 해주질 못하니까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지현이는 지난 2월 말 목뼈가 탈골돼 신경을 눌러버리는 바람에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 정태식(가명·39·북구 고성동) 씨는 수술실 앞에 홀로 앉아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다행히 두 차례에 걸친 수술은 잘 끝났다. 수술 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지현이는 재활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부터는 걷는 연습도 하고 있는 상태. 비록 머리에는 금속으로 된 고정틀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8살 난 지현이는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한다. 겨우 '아빠', '할머니'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웅얼거리는 탓에 쉽게 알아들을 수 없다. 특수교육을 시켜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것이 정 씨의 소망. 하지만 현재 형편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 씨는 지난 1월부터 아는 사람이 맡겨놓은 페인트 가게 일을 봐주면서 가게 옆에 창고삼아 둔 컨테이너에서 지낸다. 한달 일해 받는 돈은 70여만 원. 초여름 땡볕에 컨테이너 안은 한증막이다. 그나마 몸을 뉘일 곳이 있다는 것에 애써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아내를 만났을 무렵, 정 씨는 술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장사는 쉽지 않았고 가게 규모는 점점 줄어들었다. 빚만 남게 됐을 무렵, 분식점으로 업종을 바꿨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포장마차, 붕어빵 장사를 하고 아내도 화장품 영업에 뛰어들었지만 형편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지현이는 몸이 약해 잔병치레를 많이 했죠. 병원에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일이었어요. 형편은 어려운데다 아이마저 늘 아프니 아내가 견뎌내질 못했어요.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5년 전 일이에요. 아내를 원망하진 않습니다. 못난 제 자신이 미울 뿐이죠."
정 씨 곁엔 어머니와 지현이만 남았다. 작은 아이(5)는 아내가 데리고 떠났다. 결혼한 뒤 고생만 한 아내에게 몸이 성치 않은 지현이마저 떠안길 수는 없었다. 막노동판에 뛰어들었지만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장사를 하면서 진 카드빚(2천여만 원)을 갚을 길이 없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정 씨 어머니는 월 8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지내고 있다. 지현이가 병원에 오기 전 지내던 곳이다. 정 씨 어머니가 칠성시장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커피를 판지도 4년째. 하루 종일 일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만 원 남짓일 뿐이다.
"관절염으로 불편한 다리를 끌고 시장통을 돌아다니세요. 안타깝지만 말릴 수도 없네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제 처지에 뭐라 하겠습니까. 제가 핏덩이일 무렵 남편을 잃은 뒤 홀로 식당일을 하며 키워주셨는데 지금 제가 해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간병인을 둘 형편이 안돼 정 씨 어머니네 주인집 할머니가 지현이를 돌본다. 정씨네 사정이 딱해 도와주고 있는 것. 밤 9시 무렵이면 정 씨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손녀 옆을 밤새 지킨다. 그렇게 두 모자가 벌어도 지현이 병원비 500여만 원은 감당하기 벅차다.
"제가 번 돈은 모두 지현이 병원비로 써버렸죠. 덕분에 물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현이가 무사히 병원 문을 나서고 특수교육을 받아 말문만 트인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데…."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제대로 된 공항 만들어야…군위 우보에 TK신공항 건설 방안도 검토"
대구시 '재가노인돌봄통합' 반발 확산…전국 노인단체 공동성명·릴레이 1인 시위
최재영 "벌 받겠다…내가 기소되면 尹·김건희 기소 영향 미칠 것"
홍준표 "TK신공항 SPC 설립 이외에 대구시 단독 추진도 검토 중"
정부, 지방의료 6천억 투입…지방도 서울 수준으로 의료서비스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