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이 싫어요"…지상파TV 편식에 불만 잇따라

드라마 마니아를 자처하는 김영근(36) 씨는 요즘 TV 전원을 켤 맛이 나지 않는다. 직장퇴근 후 드라마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는데 월드컵 중계로 드라마가 잇따라 취소되고 결방되고 있는 것.

"저도 한국팀의 승리를 기원하지만 TV 편성표를 보면 다른 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축구보기를 강요하는 것 같네요. TV만 틀면 온통 축구이야기만 나오잖아요. 특히 방송 3사가 모두 같은 경기를 중계한다는 건 전파낭비 아닙니까."

그는 자신이 즐겨보는 드라마(월·화요일 방영)가 12, 13일 연속 결방된 데 이어 다음주 월요일(19일)도 건너뛴다는 것이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월드컵이 TV를 점령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동시에 한국팀의 첫 경기 토고전을 중계, 가구시청률 합계가 70%를 웃돈 것.

그 바람에 다른 프로그램을 보고 싶거나 다른 이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어서 전문가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지상파 방송 3사의 토고전 시청률 합계가 7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팀 첫 경기 폴란드전(74.1%)과 비슷한 수치.

또 다른 시청률 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의 조사에서도 토고전이 73.7%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에 반해 같은 시간 한국영화(B형 남자친구)와 오락 프로그램(상상플러스)을 내보낸 KBS2의 시청률은 각각 2.9%, 7.2%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팀의 경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강호간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월드컵 C조 예선 네덜란드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 시청률은 22.6%. 같은 시간대 다른 채널에서 방송된 드라마들 시청률이 10~15% 수준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안방극장을 점령함에 따라 정작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회문제들이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민주언론시민연합은"우리 사회는 풀어야할 수많은 현안들이 있는데 시청자의 채널선택권을 빼앗고 중요하게 다뤄야할 사회문제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며 "일상적인 방송내용과 월드컵 관련 방송을 균형있게 내보내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수업시간에 들어가 보면 월드컵 이야기에 신이 나 하던 학생들도 한·미FTA 이야기를 하면 말문을 닫는 등 심각한 문제는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시청자야 케이블TV라도 있으니 채널을 돌릴 수 있겠지만 한·미 FTA같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월드컵 열기에 묻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월드컵 보기만 강요하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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