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한국축구 유감

세계는 4년마다 어김없이 월드컵이라는 마법에 걸린다. 1930년 제1회 대회 이후 76년(1942, 1946년 제외)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 마법은 '축구'를 통해 지구촌을 축제의 별로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지만 승패라는 결과가 있는 이상, 모두에게 좋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한 경기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각국의 경쟁 심리는 물론이거니와 심심찮게 나왔던 심판에 대한 불복종이나 오심 문제, FIFA의 철저한 상술 등은 월드컵이 좋은 마법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지난 13일 열렸던 월드컵 예선 한국 대 토고 전을 두고 국내외에서 말이 많았던 것도 즐겁지만 않은 마법의 이면 중 하나일 것이다. 2대1의 역전승에 대한 기쁨이야 한국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팀의 태도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한국은 안정환의 역전골이 터진 후반 27분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20여분을 지루한 공 돌리기로 일관했다. 적극적인 공격을 보이지 않은 것은 물론, 심지어는 문전 가까이에서 얻은 프리킥도 뒤로 돌리며 시간끌기를 해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팬들은 '스포츠맨 십 실종' '치사한 승리'라고 비난했다. 토고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해 수적으로 우세하고, 전반의 무거운 몸놀림과는 달리 한국 선수들의 기세가 올랐는데도 화끈한 공격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공을 돌리는 시간도 길었고, 미숙한 지연작전으로 간간이 역습을 허용해 오히려 정상적인 플레이를 한 것만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지적 뒤에는 한 골이라도 더 넣어야 프랑스, 스위스 등과의 예선 경기가 끝나 같은 승점으로 골득실을 따질 때 유리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반면 또 많은 팬들은 '공 돌리기도 하나의 작전', '적극적인 공격을 하다 비기거나 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라며 옹호하기도 했다. 수비 불안으로 동점골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공격은 무의미하고, 결과가 승리로 나타났으면 좋은 작전이었다는 얘기다. 무더위로 뛰어 다니기 조차 쉽지 않은 선수들에게 역전승 이상의 추가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찬반은 야유와 두둔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밑바닥에는 모두 한국 축구에 대한 진한 애정이 깔려 있고, 첫 승을 거둔 안도감에서 나온 여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사실 승패라는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명암이 확연하게 갈리는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에서 '깨끗하고 매너있는' 스포츠맨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 깨끗한 패배보다는 다소 비신사적이더라도 이기고 나면 평가는 저절로 좋아지고, 그 승리로 인해 16강에 진출하고 8강, 4강으로 나아간다면 이날 경기의 모든 잘못된 점은 당연히 물밑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승리가 모든 것을 대변한다'는 승자의 논리다. 흔히 목적 달성을 위한 모든 수단 이용을 비난하면서도, 스스로 그 논리에 빠져 비신사적인 행위를 용인한다면 월드컵은 꿈을 심어주는 마법의 축제가 아니라 승리에 올인해야하는 치졸한 놀이에 다름아니다.

어쩌면 사소할 지도 모를 이번 토고전의 결과를 비난하자는 뜻이 아니다. 깨끗하고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았는데도 이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며, 앞으로의 경기를 더 잘 치러달라는 부탁이다. 그래서 상업성으로 덕지덕지 금박칠을 한 월드컵이지만 함께 목이 터져라 '대~한 민국'을 외친 우리 아이들에게 경기만은 스포츠맨 십으로 무장한 멋진 한 판의 승부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팀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이제 첫 경기를 마쳤을 뿐이고, 우리는 세계 최강 중 하나인 프랑스와 이러한 프랑스와 첫 경기를 비긴 스위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새롭게 정신무장을 해야할 시점에 서있다. 그럼에도 토고전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법의 축제'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즐거워야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지화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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