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박미란 作 '목재소에서'

목재소에서

박미란

고향을 그리는 생목들의 짙은 향내

마당 가득 흩어지면

가슴 속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나이테

사방으로 나동그라진다

신새벽, 새떼들의 향그런 속살거림도

가지 끝 팔랑대던 잎새도 먼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 덜 깬 나무들의 이마마다 대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톱날 심장을 물어뜯을 때

하얗게 일어서는 생목의 목쉰 울음

꿈 속 깊이 더듬어 보아도

정말 우린 너무 멀리 왔어

말갛게 목숨 비워 몇 밤을 지새면

누군가 내 몸을 기억하라고 달아놓은 꼬리표

날마다 가벼워져도

먼 하늘 그대, 발돋움하는 소리 들릴 때

둥근 목숨 천천히 밀어 올리며

잘려지는 노을

어둠에도 눈이 부시다

목재소 마당에 쌓여있는 나무들을 본다. 그 나무들에서 풍겨나는 짙은 향내를 기억한다. 숲 속에 푸르게 서 있던 그 나무에서 맡던 향내다. 한때는 숲을 무성하게 하던 생명이다. 하지만 목재소에 실려 오는 순간, 도구(목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무들의 이마마다 대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톱날'이 목재로 다듬어진다. 생명도 도구화하는 물질문명의 비정함이다. 그래도 생명이기에 '둥근 목숨 천천히 밀어 올리며' 마지막 순간, '어둠에도 눈이 부시'는 것이다.

인간의 물질문명에 의해 인간 자신도 점차 도구화되고 있지 않은가?

구석본(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