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집)'복합쇼핑몰의 대명사' 일본 캐널시티를 가다

6개 건물 잇는 '인공운하' 따라 쇼핑 즐겨

일본 열도 남쪽에 자리잡은 규슈지역, 특히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를 찾는 외지인들이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바로 캐널시티(Canal city)다. 올해로 준공 10주년을 맞는 이곳은 이름처럼 180m 길이의 인공운하(canal)가 쇼핑몰 사이를 남북으로 흐른다. 영어식 발음 그대로 하자면 '커낼시티'가 맞겠지만 일본인들은 이곳을 '카나르시티'라고 부른다.

보세의류 전문 쇼핑몰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가 한차례 된서리를 맞은 뒤 다시 도심 재개발의 일환으로 복합 쇼핑몰, 즉 쇼퍼테인먼트(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함께 갖춰진 시설)가 잇따라 들어설 예정인 대구시가 지난 1996년 개장 이래 매년 1천600만 명이 찾는 캐널시티의 성공 노하우를 접목시킬 수는 없을까? 내년 말까지 대구 도심에 들어서는 대형 쇼핑몰은 5곳. 쇼핑몰마다 멀티플렉스를 입점시키는 등 다양한 집객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일단 규모면에서 인구 125만 명인 후쿠오카에 들어선 캐널시티는 대지 1만 500평, 연면적 7만 940평을 자랑한다. 인구 250만 명의 대구에 들어설 신규 쇼핑몰 5개를 합친 연면적은 4만 평가량.

상주 인구만 따진다면 결코 승산없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대구지역 쇼핑몰들이 캐널시티처럼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캐널시티는 '올 인 원'(all in one)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단순히 지역 주민만을 타깃으로 한 쇼핑몰이 아니라 일본 전역과 전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캐널시티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 "그저 그런 쇼핑몰에 불과하다."는 시큰둥한 반응부터 "하루를 꼬박 투자해도 모자랄 만큼 풍부한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로 가득 차 있다."는 극찬까지. 캐널시티를 어떻게 둘러봤는가에 따라 반응은 극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패키지 여행상품에 포함된 명소 한 곳을 둘러본다는 식으로 한두 시간 투자해서는 캐널시티의 '참 맛'을 느낄 수 없다. 입구에 비치된 팸플릿을 들고 우왕좌왕하다가 일정에 쫓겨 서둘러 나오기 십상이기 때문.

캐널시티는 부지 매입에서 완공까지 18년이 넘게 걸린 대공사였다. 당초 창고 부지로 버려진 이 땅에 재개발이라는 명제 아래 사업을 시작했고, 총사업비 800억 엔가량이 투입된 일본 서부지역 최대 도심 프로젝트였다.

당초 밋밋하게 건물만을 지어올리려던 계획이 1988년 디자이너 존 쟈디에 의해 대폭 수정됐다. 6개 대형 건물이 마치 하나의 쇼핑몰을 이루듯 모여 있고, 그 사이를 인공 운하가 흐르면서 역동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캐널시티가 표방하는 디자인 개념은 '도시 속의 또 하나의 도시, 즐거움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미래 도시형 공간'으로 압축된다. 6개 건물에는 그랜드하얏트 후쿠오카 호텔, 후쿠오카 워싱턴호텔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캐널시티 유메 미술관, 일본 최대인 영화관 복합시설 AMC 캐널시티13, 일본 정상급 극단이 펼치는 뮤지컬 전용극장인 후쿠오카 시티극장,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170여 개 브랜드군의 캐널시티 오파, '일본의 생활'을 테마로 한 대형 편집매장 콤사 스토어, 전세계 유명 스포츠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둔 스포츠 오쏘러티, 최신 게임을 한데 모은 엔터테인먼트 존인 클럽 세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생라면 전문점들이 모인 라면 스타디움이 있다.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건물들의 집합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바로 인공운하다. 운하라고 이름 붙이기도 안쓰러울 만큼 자그마한 규모지만 건물 사이로 물이 흐른다는 것은 쇼핑으로 지칠 수 있는 고객들에게 하나의 쉼표로 다가온다. 운하를 이용한 분수 쇼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곳곳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분수를 볼 수 있다. 운하 바로 옆에 마련된 카페에 앉아 다양한 음료를 마시며 하루를 즐기는 쇼핑객들의 모습에서 캐널시티의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운하는 작을지 몰라도 수변공간까지 포함하면 적잖은 공간을 고객 편의를 위해 할애한 셈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캐널시티는 쇼핑공간이 아니라 관광명소로 알려지게 됐다.

캐널시티의 공간 할애는 아낌없는 고객 동선에서도 돋보인다. 국내 쇼핑몰 대부분이 매장 중심의 층간 구성을 한 데 비해 캐널시티는 다분히 고객 동선 중심이다. 고객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돌출가판은 찾아볼 수 없다. 점포 사이 공간이 워낙 넓어 서너 명이 나란히 걸어가도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힐 염려가 없을 정도. 또 기저귀 교환대와 온수 급수기가 갖춰진 수유실도 2곳이 있고, 어린이와 함께 온 고객을 위한 키즈랜드도 운영 중이다.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비디오를 틀어주는 형식적인 공간이 아니다. 물론 유료로 운영되지만 웬만한 놀이시설 뺨칠 만큼 깔끔하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즐거운 놀이기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같은 설계는 '플레이스 메이킹'(place making)이라는 건축설계 개념에서 비롯됐다. 기존 건축물은 '오브젝트 메이킹'(object making)에 기반한다. 건물 윤곽을 만든 뒤 건물 형태를 중심으로 설계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캐널시티처럼 플레이스 메이킹은 건물과 건물 사이 또는 건물 내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거리를 디자인한 뒤 건물의 윤곽과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캐널시티는 건축학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인 동시에 사람들이 최대한 편하게 이동할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쇼핑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만큼 고급스런 공간이라면 판매 제품도 명품군으로 치우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캐널시티는 다르다. 명품부터 저가품까지 골고루 포진해 있다. 특히 세일기간이 되면 우리 돈으로 2만~3만 원대 제품이 즐비하다. 의류도 마찬가지. 백화점 고가 의류매장 못지않게 디스플레이하고 있지만 제품 가격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고객 입장에서는 싼 물건을 고급스런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캐널시티내 아동복 매장에 근무하는 오쿠보 씨는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고급스런 매장에 한 번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란다."며 "하루 평균 400~500명이 구매한다."고 말했다.

고급스런 느낌은 고객 응대에서도 묻어난다. 콤사스토어내 조각 케이크를 파는 한 매장의 경우, 우리 돈으로 2천500원 정도인 케이크를 팔면서 고객이 미안할 정도로 친절을 베푼다. 전용 용기에 정성껏 포장한 뒤 매장 앞으로 들고 나와 고객에게 물건을 건넨다. 결코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지만 몸에 밴 친절함으로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캐널시티 한 매장 관계자는 "고객 중 상당수가 아이쇼핑만을 즐기지만 절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며 "이들이 돌아가서 전하는 말 한마디가 바로 캐널시티의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