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은 배우를 돋보이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에게 캐릭터의 이름을 입히는 것이죠."
연극이나 뮤지컬 등 무대공연에서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 위의 연기자, 즉 배우에게 머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환호와 갈채도 대부분 배우에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무대의 꽃을 피우는 것은 배우만의 능력이고 몫일까.
물론 아니다. 배우, 좀더 크게 보면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무대 뒤편을 지키는 '스탭'들이 없다면 배우는 물론 그 작품의 의미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분장도 그 중 하나다. 화룡점정(畵龍點睛). 눈동자를 그려야 용 그림이 완성되듯 분장이 끝나야 배우도 비로소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만큼 분장은 무대공연에서 하나의 중요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분야다.
분장아티스트 전용수(36). 그의 손놀림과 붓놀림은 한 사람을 한 명의 배우로 만든다. 지역 무대공연 분야에서 분장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 그만큼 그의 손길도 바쁘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들은 아마 모두 제 손을 거쳐갔을 걸요." 그는 분장이 단지 배우의 얼굴을 꾸미는 시각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이 결정되면 일단 대본을 많이 읽어보고 자료를 구해 인물 하나 하나의 특징을 검토한다. 그 다음 비로소 붓을 든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얼굴에 작은 뽀드락지라도 나면 그 원망은 고스란히 저에게 돌아옵니다. 피곤해서 생긴 일 일수도 있는데 말이죠."
전 씨가 본격적인 분장아티스트로 뛰어든 건 15년전쯤이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가 무대를 포기하고 대신 붓을 잡은 건 "연기에는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마음을 돌린 후 유명 분장아티스트를 찾아 본격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벽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가로 세로로 선긋기, 동그라미 그리기 등 기초적인 것부터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갔다. 일주일에 두서너 번 서울을 오가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그 때 다진 실력이 지금껏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은 건 그 해 10월로 기억한다. MBC분장사 공채에 합격해 '종합병원', '우리들의 천국' 등 당시 인기 드라마의 분장을 담당하게 됐다.
대선방송이 최초로 시작됐던 92년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등 대선후보들의 분장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내로라하는 최고의 연기자들과 같이 작업한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정한 형식을 넘지 못하는 방송 분장이 오히려 창작열의를 멈추게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송 분장을 한지 6년. 그는 결국 '틀'을 깨고 자신만의 분장세계를 펼칠 기회를 다시 찾기 위해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것은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공연을 열흘 앞두고 방송사 합격 통지를 받으면서 공연을 못하게돼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꼭 기술을 배워와 이들과 대구를 위해 써야지 다짐을 했었죠."
매체가 늘고 분장에 대한 기술과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일하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그래서 그는 대학원을 다니며 지식을 쌓았고 여러 편의 논문과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책도 펴내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오는 9월 30일 컬러풀 축제의 '아시아의 빛' 코너에서 언제나 하고 싶었던 미개척분야에 또 하나의 도전을 한다. 춤을 추며 메이크업을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 늘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스탭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분장아티스트를 드러내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1년간 댄스 학원을 다니며 동작을 익혔고 3개월 전부터는 안무를 짜 춤과 어우러지는 메이크업을 완성해가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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