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벌들은 어디에 벌집을 지을까

추석을 맞아 벌초를 다녀왔다. 벌집을 쑤셔 놓은 듯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였다. 벌집을 잘못 건드려 큰 낭패를 보았다. 혼비백산이라는 말이 그처럼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 조심조심하였지만 벌집이 어디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없었던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벌들은 어디에 벌집을 지을까. 벌집을 확인하고 나면 꼭 그럴만한 곳에 벌들이 벌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타까워하지만 항상 뒷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세상에는 사전적(ex ante)으로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사후적(ex post)으로는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꿰뚫어 설명이 가능한 것이 많다.

미리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후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또는 어떠한 과정을 밟아서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사후적으로 어떠한 사건의 전후관계를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사전에 그것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아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그런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실리콘 밸리는 산업 클러스터 조성의 이상적인 모형으로 그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기에 버금가는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세계 주요 도시와 국가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사후적으로 실리콘 밸리의 형성 과정을 아무리 훌륭하게 설명하는 것과 실리콘 밸리에서 형성된 IT산업 클러스터를 사전에 기획하여 만들어내는 일은 전혀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묘 주위에 특정 장소를 미리 정해 벌들을 불러 모아 인위적으로 벌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지역도 산업 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다. 그 노력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여전히 성장 동력 확보에 관한 논의가 우리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것은 그간의 모든 노력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벌집이 만들어지는 것도 그렇고 산업 클러스터 형성 과정도 그렇듯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강화성(self-enforcing)을 가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벌집과 산업 클러스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내부 동력이지 외부 조건의 형성에 따라 유도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 때처럼 눈덩이를 손으로 밀고 발로 차서 눈덩이를 키워 본들, 먼 설산에서 견디다 못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눈사태와 견줄 수 있을까.

지역에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노력과 관련하여 우리가 눈여겨 살펴볼 것은 바로 자기강화성이다. 자기강화성은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으로, 그것이 결과의 사전적 예측 불가능성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역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노력은 어떤 특정 산업을 미리 선정하여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실패한 전략을 답습하기보다는, 결과의 불확정성을 어느 정도 감안한 채 그 과정에서 자기강화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경제에서 자기강화성을 기대할 수 있는 핵심적 자원은 사람이다. 이는 내생적 성장이론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로머가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인재는 모이면 모일수록 각자가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지역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노력은 그 바탕에 사람을 두고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앙 정부의 예산을 끌어오는 일보다 외부에서 인재를 끌어오는 일이 더 의미가 있다. 공장을 유치하는 일보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업가를 유치하여야 한다. 연구소 내의 기술혁신보다는 현장에서의 기업가 정신이 숭상되어야 한다. 지역 경제계의 세대교체를 주도할 수 있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 바로 성장 동력이다. 벌집을 어디에 지을지는 그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김영철 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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