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꿈 나의 삶, 김연철] ⑫전화 벨 소리

1970년대 대학입학 예비고사는 시·도 교육청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하고 힘들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큰 사업으로 만약 어느 한 시·도에서 착오가 생기면 전국이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당시 경북교육청의 경우(대구 포함) 응시생이 6만 여명이나 되어 업무량이 방대했다. 그러나 이 일을 맡아하는 사람은 전문직 4명과 사무 보조원으로 동원된 여상 학생 60여 명뿐이었다. 고사 당일 새벽 5시에 각 고사장에 문제지를 배부하면 이상 유무를 전화로 보고하게 된다. 이때 전화 벨 소리는 유난히 요란하다. 고사본부에서는 혹시 이상이라도 있을까봐 바짝 긴장하게 된다.

1979년 11월 경북고사장 본부는 대구여중 강당이었다. 나는 담당 장학사로서 문제지를 수령하러 교육부로 올라가니 제2교시 수학 문제에 정답이 없다며 정정 내용을 각 시·도 고사실 수만큼 별도 봉투에 넣어준다. 고사실 감독관이 흑판에 게시하라는 지침도 받았다. 고사 당일 제2교시에 들어갈 감독관들에게 이 사실을 단단히 일러주고 별도 봉투를 배부했다. 그런데 제2교시 수학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그 문제의 정답이 몇 번이냐고 묻는 바람에 이를 게시하지 않은 고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전화 벨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전달이 되지 않은 고사실이 모두 5개 고사실, 그날은 교육감님을 비롯하여 전 간부가 한자리에 계시면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교육감님은 급히 계엄사령부에 협의차 나가시고 교육부에서는 급하게 전화 벨을 울려댄다. 흑판에 게시하지 않은 5개 고사실은 제3교시 시작 전에 2분 동안 시간을 주어 재시를 치렀다. 이때가 박대통령 서거로 계엄 중이었으므로 보도관제가 되어 외부는 조용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징계 등 많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 후 나는 전화 벨 소리만 나도 질급을 하게 되었다.

교육청의 큰 업무 중 또 하나는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다. 이때 연합고사 문제는 시·도 교육청에서 출제했다. 여기에는 유능한 학교장, 교육청 전문직이 관리 및 평가 업무를 맡고 시험문제는 능력 있는 학교 교사가 담당했다. 복사 요원 2명 등 20여명이 약 20일 동안 연금되어 출제업무에 종사한다. 모든 문은 폐쇄되고 전화, 신문, TV 등도 활용할 수 없다. 출제위원은 해당 문항의 2배수가 되는 20~40 문항을 작성해 결재를 받는다. 처음은 1~2 문제 밖에 통과되지 않다가 또 새로 출제해 평가단에 가면 겨우 3~4 문제 정도만 통과된다.

출제평가단은 수차례의 출제경험이 있어 전 과목을 거의 잘 알고 있다. 출제위원들에게 고된 훈련과정을 겪게 하여 좋은 문제를 내게 한다. 이런 과정을 겪어 출제와 복사가 끝나면 고사장과 고사실별로 문제지를 배분한다, 이때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 생활 소감을 말하게 되면 어느 출제위원은 도저히 참지 못하여 탈출하려고 창문을 몇 번 열려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연합고사 당일 문제지가 배부되고 시험이 시작된다. 전화 벨 소리가 나면 무슨 착오가 있나 가슴이 덜컥 내려 않는다. 다행히 문제 오류는 지금까지 대구·경북을 통틀어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전화 벨 소리가 나면 내가 무슨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나 하고 긴장하게 된다.

김연철 전 대구광역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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