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나 잠을 자지 못했던걸까. 작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눈두덩만 퉁퉁 부어있었다. 창 닳은 국방생 모자를 푹 눌러썼다. 자신을 감추고 싶다는 몸짓 같았다. 극심한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무엇보다 '죽고싶다'는 충동이 그를 괴롭혔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2년을 보냈다. 어렵게 만난 브로커는 '몽골 국경을 뒤돌아보지말고 넘어라'고 지시했다. 한국으로 들어온지 이제 5개월째.
"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도대체 저는 쓰일 데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김민경(가명·여·23) 씨는 대형소매점 점원으로 잠시 일했다.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고 내 말을 손님들이 선뜻 알아듣지 못했다.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캐쉬백이 도대체 어떻게 쓰이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손님들은 "어디서 왔냐?"라고 자꾸 물었다.
취업정보지에 소개된 곳으로 전화하면 노래방 도우미를 찾고 있었다. "손님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 했지만 아는 노래도 없었다.
엄마가 나타나는 꿈이 싫어 불면증이 찾아왔다. 수면제를 입 안 가득 넣어봐도 소용없다. 북에 있는 엄마, 아빠, 동생이 눈에 밟힌다. 버젓한 일이라도 있으면 잊고 살텐데 취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의 소개로 직업학교에서 미용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김 씨. "어디서 왔냐?"고 묻는 언니들에게 '조선족'이라고 했단다. '탈북했다'는 말은 이제 잊고 싶다고 한다.
"결혼요? 내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엄마, 아빠와 중국에서 집 사고 같이 살았으면 제일 좋겠는데..."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휴대폰 음성녹음 버튼을 누른다고 했다. 마치 대화하듯 하루 일과를 말하고 안부를 묻는다. 생사를 걸고 철책을 넘었던 그 생생한 기억, 고향에 대한 향수, 외로움... 오늘도 김 씨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서상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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