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대구 야경

얼마 전 신천 무너미터에서 대구 빛축제(루미나리에)가 열렸다. 볼거리가 마뜩찮던 시민들은 가족들끼리, 혹은 연인과 손을 잡고 삼삼오오 빛축제에 몰려들었다. 아치형 조형물에 수많은 오색 전구를 달아 불을 밝히니 신천을 걷는 기분은 흐드러진 벚꽃길을 걷는 만큼이나 황홀했다. 덤으로 간단한 요깃거리, 즐거운 공연, 다양한 볼거리는 하룻밤 즐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단체로 외국여행을 나가면 경치가 빼어난 곳이나 유적지를 찾아,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소위 '깃발 여행'을 하기 마련이다. 낮 동안은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 다니며 사진이나 찍고 어둡기 무섭게 숙소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외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여행의 참맛은 밤 문화일 것이다. 혼자서 간편한 복장을 하고 그 지역의 서민들이 많이 찾는 시장을 찾으면 진짜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 해가며 과일이라도 한두 개 흥정해보고 푼돈 주고 액세서리 고르는 재미는 쏠쏠하다.

만일 내게 외국 친구가 있어 대구에 온다면 무척 고민스러울 것 같다. 낮에야 안내할 곳이 있겠지만 밤이 되면 도무지 즐길만한 '꺼리'가 없다. 서문시장을 구경시켜줄래도 저녁이면 전부 문을 닫아버리지 약령시도 암흑천지다. 깜깜한 밤 앞산공원을 데리고 갈 수 있나, 자기 나라에 더 화려하고 멋진 쇼핑가도 수두룩한데 동성로를 끌고 다닐 수가 있나....

먹을거리도 마찬가지다. 어느 집이나 비슷한 한정식은 식상하고 특별한 맛 집, 골라먹는 재미를 맛볼 곳이 없다. 막창이나 '뭉티기' 한번 대접하고 나면 더 이상 안내할 곳이 없다. 그에 비해 가까운 중국, 일본의 대도시만 보더라도 북경의 '왕부정 거리' 교토의 '니조 거리' 는 볼거리 먹을거리로 넘쳐난다.

대구도 볼거리 먹을거리로 밤이 살아있는 도시로 꾸밀 수는 없을까. 우선 도청교에서 신천교까지의 무너미터에 레이져쇼와 빛의 예술 공원으로 꾸미면 어떨까. 신천교부터 동신교 구간은 젊은이 광장으로 꾸며 밤마다 록밴드·댄스 공연을 하도록 하고 롤러블레이드, 자전거 묘기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신교에서 수성교 구간은 몽골 텐트를 쳐서 먹을거리촌으로 꾸며 지역 영세업자들에게 임대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된다. 수성교에서 희망교까지는 골동품이나 앤티크, 공예품 판매 노점을 조성하면 괜찮을 듯. 희망교부터 상동교까지는 루미나리에 구간으로 마무리하여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만들면 근사하지 않을까.

물론 걸림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천시를 고려해야 할 것이며, 산책 공간 확보도 묘안을 짜내야 할 것이고 소음으로 인한 주변주민 피해, 치안대책도 세워야 하고 오물, 쓰레기 처리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문제의 해결을 조건으로 운영조례를 만들고 법인을 공개모집한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아닐 듯싶다.

서중교 에스제통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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