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生의 가지 붙들고 계신 어머니 연상

오랜만에 딸들과 손녀를 데리고 수성못에 들러서 단풍구경을 했다. "할머니, 나랑 저 빨간 단풍나무까지 누가 더 빨리 돌고 오나 내기해요." 하며 졸라대는 현지와 달리기를 했다. 남들이 보면 '내일 모래 환갑인 저 할머니가 왜 저러나'할까봐 힐금힐금 주위를 살피며 뒤를 따라가다가 끝내는 현지에게 지고 말았다. 현지는 좋아서 싱글벙글 웃음꽃이 핀다. "할머니, 예쁜 낙엽 주워 주워주세요."

현지의 말에 낙엽을 주우려고 떨어진 낙엽들을 뒤적여봐도 예쁘게 물든 낙엽이 없었다.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들도 눈여겨보니 비바람에 찢겨져 나가고 차가운 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그 모습이 몇 년째 누워만 계시는 친정어머니 모습 같아 가슴이 메여왔다.

낙엽의 상처투성이 흔적처럼 어디하나 성한 곳 없는 내 어머니의 여든 살생의 흔적은 발등은 통통 부어오르고 덤성덤성한 백발에 백내장으로 흐릿한 눈동자는 내가 돌아오려고 하면 이내 물기가 주르르 흐른다. 언젠가 햇볕 따스한 날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더 자주 들러서 목욕시켜드리고 주물러 드려야겠다.

오늘은 심심하게 된장국 끓이고 풋고추 곱게 썰어 넣고 정구지 지짐을 부쳐 어머니께 가봐야겠다. 어머니께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이기순(대구시 달서구 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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