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생각하는 통합논술 대비는 '논리'적 연습을 통한 논증적 표현의 일상화, '가치관'의 토대가 되는 자기의 규범적 입장 세우기 그리고 '교과과정 집중'이라는 세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런 대비는 '논리-가치관-교과과정 논술'로 명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자연계열의 통합논술이 어떻게 이런 방법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계열의 논술과 자연계열의 그것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학탐구적·수리적 사고에서 좀 더 많이 유래되고 그래프와 도표를 많이 활용하는 자연계열의 제시문에서 나타나는 것 같지만 도표와 그래프도 사실은 언어이며,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사고의 본성도 논리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 사이의 차이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한 논점은 인문계열의 논술이든 자연계열의 논술이든, 논술은 암기에 의존한 사실적 영역에 대한 단순한 지식 평가가 아니라 그런 영역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묻는 것이다.
먼저 가치(value)란 무엇인가? 가치는 사실(facts)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어떤 것이다. 먼저 '사실'이란 우리의 인식작용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우리가 생각하든 안 하든 존재하는-세계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내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지구가 태양을 일 년에 한 번 돈다'는 사실은 내가 자고 있거나 이 세계에 인류가 완전히 멸종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행동은 올바르다'거나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전자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항상 동시 측정가능하다는 주장보다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전자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항상 동시 측정가능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더 합리적이다' 등의 문장은 사실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비록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행동과 원자핵을 돌고 있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사실적 세계의 존재들이지만 그것들에 대한 '올바르다'와 '합리적이다'는 평가는 우리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가치이다. 인간이 없으면 그런 평가를 실행할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중등 교과서들은 이런 사실에 속하거나 사실화 가능하고 또는 최소한 객관화 가능한 고정적 지식을 주로 논증적 글쓰기가 아니라 해설적 글쓰기를 통해서 다루고 있으며, 교과서를 읽는 학생들이 개념의 논리적 분석을 통해 책속의 주제들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철저하게 중등교과서가 수록하고 있는 고정적 지식의 범위 내에서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테스트한다. 그래서 주어진 문항에 대한 모범답안이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서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논리적 확장이나 비판, 그리고 창의적 발전은 무의미해지고 철저한 암기가 자연스럽게 강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사실 수능시험 준비가 코앞에 다가온 학생들 중에 그 누구도 교과서 내용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암기를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5지선다형의 문항으로는 가치를 평가할 방법이 없다. 만일 누군가 수능시험 문항으로 그런 문제를 5지선다형을 통해서 낸다 하더라도 그 문제는 분명히 복답 가능성 시비에 휘말려 버릴 것이다. 그래서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재를 수능만을 통해서 선발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이것이 바로 각 대학들이 대학입시에서 논술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이유이다.
논술은 바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가치의 영역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고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 대상에 대해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논술시험이라도 절대 모범답안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술시험을 실시한 많은 대학에 따르면 학생들의 대학 논술 시험의 답안은 전부 비슷하거나 때로는 동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학생들이 가치의 문제와 사실의 문제에 대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거나 그럴 능력이 없어 가치조차도 누구에 의해서 암기되었다는 믿기 힘든 상황을 가정하게 한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학생들은 먼저 자기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한다. 이것은 모든 문제에서 항상 일관된 자기의 입장(position)을 가지라는 말이다. 앞으로 가치를 이루는 또는 입장의 근거를 제공하는 성질을 포함하는 '올바름'과 '합리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보고, 어떤 형태의 글쓰기가 그런 성질을 포함하는지에 관해서 차례대로 논의한 후 지난 호에서 제시되었던 '사람 구하기'의 제시문은 과연 어떤 가치의 문제를 묻고 있는지 검토해보자.
이종왕(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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