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한권의 책] 희랍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니체는 현재의 삶에 몰입하며 삶을 사랑하는 자를 희랍인이라고 불렀고, 그 대척점에 선 사람을 유태인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희랍인은 대지에 발 딛고 땀흘리며, 먼지 구덩이에서 뒹구는 사람을 상징하고, 유태인은 그 반대인 사람으로 피안을 꿈꾸는 사람을 상징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는 '니체의 희랍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중략) 그는 책 속에만 파묻혀 지내온 내 삶의 스승이이며, 탄광촌에서 만난 퇴물 창녀의 연인이며, 버림받은 과부나 고아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입술은 거친 언어와 욕설을 뱉느라 노상 실룩거렸지만 가슴은 사랑해야 하는 삶의 모든 것을 향해 언제나 열려 있었다. 일과 휴식, 술과 여자, 노래와 춤, 빵과 과일. 희랍인 조르바의 삶을 채우는 것은 이토록 적나라하고 단순한 것들이었다.

조르바의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는 대화들은 많다.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그는 산투리를 키고 싶으면 산투리를 켰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셨고, 여자가 필요하면 여자를 찾았다.

화자인 나와 조르바는 탄광사업을 벌인다. 조르바는 탄광의 십장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지폐,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 넣은 탄광사업은 실패로 끝난다. 케이블이 부서지고 철탑은 무너진다. 일체의 구조물이 산산조각 나고, 모든 것이 끝장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조르바와 나는 빈 자갈밭에서 춤을 춘다. 신명에 젖은 춤….

패배할 수 있으나 파멸될 수 없는 인간. 그가 바로 희랍인이다. 때로는 조르바처럼 우리도 '희랍인'이 되어, 한바탕 춤을 추는 것은 어떨까.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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