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범죄 나날이 지능화…대응은 '초보 수준'

박모(40·북구 대현동) 씨는 최근 '국세청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돌려줄 세금이 있다."는 그럴싸한 얘기였지만 아무래도 사기꾼 같아 "3시간 뒤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그동안 신고해 발신자 추적을 통해 사기꾼을 잡을 생각이었지만 경찰, 국세청, 전화국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개인이 속지 않는 수밖에 없다는 것. 박 씨는 "유사 범죄를 미리 막고 범죄자를 잡아야 할 당국이 검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정모(43·여·동구 신서동) 씨도 20일 오전 서울지법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차례 출두요구를 보냈지만 요구에 응하지 않아 이젠 직접 법원으로 나와야 한다는 '출두명령'을 받은 것. 그러나 정 씨는 어눌한 말투에 통화를 끌려는 느낌을 받아 곧 끊어버렸다.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다 혹시 사기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취재진의 도움으로 KT 측에 발신자 확인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용약관에 의거, 발신자를 알려줄 수 없으며 본인의 발신목록만 복사, 열람할 수 있다는 것. KT 관계자는 "이런 사기 사건으로 발신자 확인 신청이 들어오는 것만 하루 평균 3, 4건"이라고 말했다.

범죄는 나날이 지능화되고 있는데 대응은 완전 초보수준이다.

최근 국세청,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공단 직원을 사칭한 유사 사기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발신자를 추적하려면 '협박, 납치 등 범죄성'과 KT, 이동통신사의 협조가 필요한데다 절차도 복잡해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경찰이 '피해자 수사 의뢰→검찰에 통신 사실 확인자료 신청→검찰의 영장 청구→영장 발부→KT에 요청'이라는 단계를 거치는데만 2, 3일이 걸린다. 그러나 발신지를 밝혀내도 대부분 속칭 '대포폰(다른 사람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 전화)'이거나 유동 IP, 외국에 서버를 둔 인터넷 전화를 쓴 경우가 많아 검거가 불가능하다는 것. 또 연금공단, 국세청의 대표번호를 띄우거나 추적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전화번호도 만들기 때문에 아예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경찰 관계자는 "납치, 협박, 인질 등 강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으면 발신지 추적을 의뢰할 수 없다."며 "대포폰, 대포통장은 뒤를 쫓을 수 없고 날로 지능화되는 범죄에 우리 기술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국세청, 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공단 등 관계당국도 피해가 없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입장이다. 본인 스스로 사기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국민연금·건강보험공단 관계자들은 "은행 현금출력기에 사기피해를 조심하라는 스티커가 모두 붙어있고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져 최근에는 이런 사기 사건이 잠잠해졌다."며 "기관에서는 홍보외에 다른 방법이 없고 피해가 발생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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