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주재원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주말이면 아직 어린 아이들과 자동차를 몰고 나들이를 하곤 했다. 차가 낯선 곳으로 가면 어린 아들이 영락없이 묻는다. "아빠, 가는 길 알아?" "거기가면 좋아?" 어린 마음에 차가 낯선 곳으로 자꾸 가니 불안하기도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과연 얼마나 즐거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때마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아빠는 여기 길 모두 알아. 조금 있으면 네거리가 나오고 그 길로 한 시간 정도 가면 돼. 가다가 보면 큰 호수가 나올거야. 그곳에 가면 탈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기린이라는 동물도 있단다...." 등 등.
아직도 그날의 부자간의 대화가 기억나는 것은 그것이 우리 가족의 즐거운 한 때의 추억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화야말로 회사의 경영자가 보여 주어야 할 비전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떤 회사에서나 경영자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조직을 어디로 가져가고 있는지 가는 길과 목적지를 미리 또렷하게 밝히는 일이다.
비전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기업의 경우 주주와 구성원이 비전을 기다린다. 주주의 경우는 자기가 투자한 회사가 금년에 얼마큼 성과를 낼 것이며, 향후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경영자가 어떤 전략으로 어떤 행동을 할 지 알고싶어 한다. 구성원에게 기업의 비전은 더욱 중요하다. 비록 오늘의 노동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희망찬 미래가 약속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참아내고 이겨낼 수 있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비전을 제시하기 전에 각 계 각 층의 사람들로부터 널리 의견을 들어 보기도 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결단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이 경영자가 해야만 하는 고독한 결단이다.
문제는 결단의 과정과 방법에 있다. 전문경영인의 최고봉이라 할만한 잭 웰치조차도 같은 메시지를 쉰 번쯤 반복해서 말해야 조직에 자기의 말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고 한탄했으니 범인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비전을 제시하는 방법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또렷하면 또렷할수록 비전은 잘 전달된다. 잘 전달된 비전은 주주를 안심시키고 구성원에게 힘을 준다. 오늘의 고통을 잊게 하고 내일의 투자를 기획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리더는 비전을 또렷하게 만들어서 단순한 경로를 통하여 전달할 수 있을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선 리더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원가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되고자하면 우선 사장실부터 검소하게 꾸며야 할 것이고 기술력있는 기업이 되고자 하면 사장부터 책상 위에 기계 부품이나 전자제품기판을 늘여놓고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다음으로는 기업의 미래 모습을 촛점이 잘 맞는 사진처럼 최대한 또렷하고 상세하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어야 한다. 이 그림이 또렷하면 또렷할수록 구성원은 자기가 속한 조직이 어디로 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오게 될 것이다. 또 주주의 경우 경영자의 선임이 합당하였는지, 앞으로 계속 지휘봉을 맡겨도 될 것인지 판단하는 좋은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쉽게 이해되는 또렷한 비전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조직은 힘이 세다. 그들은 눈앞의 어려움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을 마음 속에 지니게 된다. 내일의 보람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할 수 있고 계속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서 희망이라고 한다. 희망은 그래서 힘이 세다. 희망은 사람을 살맛나게 하고 기운차게 만든다. 희망은 우리의 하루를 웃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하고 지루한 일상을 의미있는 시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능력있는 경영자와 그렇지 못한 경영자를 구별하는 기준 중의 하나로 비전 제시능력, 즉 희망을 나누어줄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잣대가 언제나 유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가정의 경영에 유효한 것은 회사의 경영에도 유효하다. 아마, 더 큰 범주의 일도 그러할 것이다. 새해 새 아침이다. 우리는 힘센 희망을 기다린다.
김연신 한국선박운용(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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