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들의 사연...사랑해 돼지

1) 우리 막내 별명은 돼지

두 아들이 장성해 27, 28살 멋있는 청년이 됐다. 적어도 엄마 눈에는 최고로 보인다. 우리식구 모이면 옛날 얘기하며 웃을 수 있는 별명 하나가 있다. 결혼하여 시부모님과 시누이,시동생 3대가 한 집에서 12년을 살았다.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따로 반찬을 해주지않았다. 편식을 없애자는 남편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두 아들 가리는 음식없이 잘 먹어주어 참 고마웠다. 여름에는 열무김치에 된장 넣어 쓱쓱 비벼먹고, 겨울엔 동치미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우유도 큰 팩을 사다 놓으면 둘이 경쟁하듯 마셔버리곤했다. 아침 운동을 하며 자전거타기, 배드민턴, 공차기 등을 했지만 먹는 양에 비해 운동이 따라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작은 아들이 50kg이 넘게 되자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돼지라고. 5학년때엔 담임선생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단다.

"그렇게 몸이 뚱뚱해져서 뭐할래?" 그날 이후로 열심히 운동했다. 이젠 의젓한 사회인이 돼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을 열심히 운동한단다. 그때 충격을 주었던 '돼지'라는 별명이 이제 애칭이 돼 엄마 휴대폰에 문자 보낼 때마다 "돼지 잘 있어요."라며 웃겨준다. 키 180cm에 몸무게 80kg. 건강한 아들, 고마워.

여종희(대구시 남구 대명 4동)

2) 남편의 못말리는 돼지사랑

결혼한지도 횟수로 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데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신랑의 돼지고기를 향한 열렬한 사랑이다. 일주일에 세 번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가보다. 삼겹살에 목살에 수육에 족발에 불고기까지 질리지도 않나보다. 아들 녀석까지 덩달아서 돼지고기를 즐긴다. 난 그 돈이면 다른 반찬들을 많이 살 수도 있는데 한번 먹어 버리면 말 것을 그토록 먹고 또 먹고.

이렇게 찐한 돼지의 사랑을 누가 말리겠는가? 소주 안주에 돼지고기가 딱 이라나? 집에서 구워 먹으면 사실 난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식당에 가서 먹는 돈에 3분의 1 밖에 들지 않으니까 싫어도 해주는 편이다. 먹을 때의 그 행복한 표정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돼지는 알까? 우리 신랑이 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지를.

박정미(대구 중구 남산1동)

3) 동물원을 사랑한 돼지들

그룹 '동물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서로의 이름과 태어난 해의 동물을 함께 기억하는 우리에게 신영, 해련, 광미 언니는 나이를 뛰어넘은 '돼지 친구'들이었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열린 '동물원' 콘서트를 보고난 감흥을 적어보낸 신영 언니의 편지. '그 매혹적인 노래들, 난 또 행복했었다. 나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것 같아.' 나는 올 겨울도 인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내 삶에 따스함과 사랑을 전해준 고리이자 작은 시작인 '동물원'과 '사랑스런 그녀들'을 떠올린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 분명 심장을 뛰게 하는 열정은 숨쉬고 있으며, 삶을 볼 수 있는 깊이있는 시선도 멈추지 않으리라.

박소현(대구 서구 평리2동)

4) 고마워 돼지야!

올 한해는 정말 힘든 한해였지만 돼지 덕분에 연말에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됐다. 대학교 4학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라는 유행어가 두려워지는 시기. 될듯될듯하면서 최종면접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제 자신을 원망하고 이러한 현실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유일한 희망이던 금융회사 한 곳의 최종면접을 통보받았다.

9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3차례 인성면접과 합숙면접을 거친 결과였다. 이전에 몇차례 최종면접에서 쓰디쓴 고배를 맛본 뒤라 겁이 덜컥 났다. 정말 신(神)이 있다면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부산 용궁사라는 절을 찾았다. 바다와 가까이 있어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았다.

입구부터 한쪽에 나란히 서있는 십이지신상을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돼지띠인 나는 가장 뒤쪽에서 우람하게 서 있는 돼지상 앞에서 내 마음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했다. 그 후 난 지금 이태백과 이구백이 아닌 신입사원으로서 연수과정을 거치고 있다. 지금도 그 돼지상을 그릴 수 있을 만큼 뚜렷하게 생각나고 내 홈페이지에도 돼지상 사진을 올려놓았다. 내 소원 들어준 거 잊지않을께. 연수과정 마치면 꼭 한번 더 찾아갈께. 고마워! 돼지야.

권두나(대구 북구 관음동)

5) 빨간 돼지 저금통

비록 금돼지는 아니지만 우리가족에게 금지 이상의 의미를 갖게 해주는 빨간 돼지 저금통 이야기를 할까한다. 2007년을 맞기전 우리가족들은 우리집 빨간 돼지를 잡기로했다. 해마다 연초에 돼지 한마리와 작은 돼지 두마리를 사다 아들 한마리 딸한리 우리부부 큰 돼지 한마리를 각각 부양한다. 그런후 12월 마지막달에는 각자 모아놓은 빨간 돼지 저금통을 방바닥에 쏟아붓고 가족들과 함께 둘러 앉아 동전을 분리한다. 이순간 이야말로 얼마되지 않은 비록 작은 돈이지만 가족 모두 흐믓하고 부자가 된 기분이 드는 시간이다. 모두들 부자가 된듯이 "하하호호"

빨간 돼지저금통에서 토해낸 동전은 다음해를 위해 다시 돼지 3마리를 사고 나머지는 애들 통장으로 입금시켜준다. 조금배가 부르다고 당장 토해내게 하지말고 끈기있게 꾸준히 동전이 생길때마다 돼지밥을 주게하여 1년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것도 좋을 듯 싶다.

최정희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6) 군 시절, 양돈농가 대민봉사

군 제대후 한동안 돼지고기를 먹질 못했다. 제대 말년, 전방에서 근무하던 군인들에게는 대민활동은 힘든 군생활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보통 계급이 높은 사병들이 지원해 잠시 외출 아닌 외출을 즐긴다. 나에게도 말년 병장이 돼서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대민활동을 간 곳은 양돈농가. 하지만 그곳에는 내가 치워야 할 엄청난 량의 돼지 변과 음식물 찌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내내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돼지사육장을 치우고 나서 점심 식사에 나온 메뉴는 돼지 삼겹살와 돼지 갈비. 아직도 돼지 변 냄새가 몸에 진동하는데 돼지고기가 온통 돼지 변으로 보였다. 결국 제대로 점심식사 한번 하지 못하고 오후에도 돼지와 싸우다 복귀했다. 지금도 돼지고기를 볼 때마다 그 때의 고생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한 때는 돼지고기도 먹지 못했는데 지금은 즐기게 됐다. 올해 양돈업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먹읍시다.

김정훈(대구 서구 평리동)

◇ 상품권 당첨자 명단

* 이호창(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 엄연희(대구 수성구 황금동)

* 김현정(대구 서구 내당4동)

* 여종희(대구 남구 대명4동)

* 권두나(대구 북구 구암동)

* 최정희(대구 수성구 범어동)

* 안순임(대구 달서구 상인동)

* 박재희(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 이미정(대구 남구 대명4동)

* 배강영(대구 수성구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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