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할말 있습니다)김문기 대구경영자총협회장

최근 현대자동차 노사 대결 국면이 심상치 않습니다. 대구·경북지역 주력산업으로 성장한 자동차부품업계 사람들의 속도 타들어갑니다.

현대차의 임금 및 단체협상이 벌어지는 시기만 되면 매년 지역 차부품업계는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툭하면 파업이 벌어지면서 부품업계는 기계를 놀려야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임단협 시즌도 아닌데 현대차 노사가 때아닌 성과급 문제로 대결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150%를 달라고 했는데, 회사는 100%만 줬다는 것이 갈등의 이유입니다.

현대차 노사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재채기'만 나와도 지역 차부품업계는 '태풍'을 맞습니다. 영향을 받는 업체가 지역에서만 어림잡아 1천 개가 넘습니다. 이들 업체는 연간 10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지역 산업의 기둥입니다.

지역의 대형 차부품업체인 세원그룹 회장이자, 대구경영자총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문기(63) 회장이 한마디하고 나섰다. 그는 모두가 살기 위해 이제 대립의 노사관계를 끊어야한다고 호소했다.

"현대자동차가 라인을 세우면 부품업계는 기계를 세우고 청소를 해야합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받아줄 곳이 없는데 만들어서 뭐합니까? 요즘은 재고를 많이 남기지 않는 추세여서, 완성차 업체가 서면 무조건 부품업계도 조업을 멈춥니다. 그런데 완성차 노조의 집단행동 때문에 수천개 협력업체가 또다시 매일 청소만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큰 국가적 낭비가 있습니까?"

10일 낮 대구경영자총협회 회장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무려 3시간가량 열변을 토했다. 그는 조업을 못하면 이익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그에 따르면 전체 매출의 12.5% 가량이 인건비, 11% 가량이 감가상각비인데 조업을 못하면 가만히 앉아서 인건비와 감가상각비를 날리는 셈이라는 것.

더욱이 자동차부품산업은 거대한 설비가 들어가는 장치산업인데 이 설비를 구입할 때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의 이자까지 더하면 조업을 못해 벌어지는 손해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현대·기아차 협력업체가 1·2·3차밴더만 전국에 3천600곳이 있는데 대구경북에 협력업체가 가장 많습니다. 저희 회사 협력업체만 따져도 큰 규모의 회사만 16곳인데 그 아래 단계 부품을 갖다주는 회사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업체가 연결돼 있겠습니까?"

김 회장은 차부품업계가 사는 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노사문화의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저는 근로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임금이 적어서 노사간의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현대차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얘기했습니다. 노사간에 신뢰가 존재하지 않으면 돈을 아무리 안겨줘도, 매일 선물을 가져다준다해도 갈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실감한다고 했다.

"10여년 전인가, 저희 회사 사무동 화장실과 생산현장 화장실 도색작업을 했는데 두 곳의 페인트 색깔을 달리했습니다. 그런데 사원들 대다수가 사무동 화장실에 와서 용변을 보는겁니다. 사원들 입장에서는 '아마, 사무동 화장실에 경비를 더 많이 들였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CEO는 나름대로 잘해주려고 했지만 사원들의 마음에는 아직 신뢰가 자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후 사원들의 신뢰를 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신뢰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도 깨쳤다.

"사원들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면요, 0.5% 정도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직접 다가가서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면요, 또 1% 생산성 올라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원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그 사원의 어른 안부를 물어보면요, 10% 가까이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무엇때문이냐고요? 사용자와 근로자간에 신뢰가 형성되기 때문이죠."

그는 사용자 스스로가 신뢰를 심어주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최근 일부노조의 극한 투쟁은 우리 사회 전체가 꾸짖고 나무라야한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근로자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지, 싸움을 위한 싸움을 벌여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과거엔 경리부장을 잘 둬야 회사가 성공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노무부장을 잘 둬야 회사가 잘 굴러간다고 CEO들끼리 모이면 입을 모읍니다. 노사관계 때문에 기업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노동운동의 변화를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합니다. 이제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죠."

김 회장은 지역 차부품업계가 대단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전망도 밝다고 했다. 이제 글로벌 품질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완성차업계를 비롯, 일부 부품업체의 노사관계 안정만 이룩된다면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우리 노사문화를 바꾸는데 대구경영자총협회가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근로자도 경총을 방문, '우리 사장님이 이런 점에서 불합리하다'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하려고합니다. 그러면 경총이 중재가 돼 그 회사의 노사관계를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바꿔나가면 이제 '대결과 투쟁'의 노사관계를 끊을 수 있을겁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김문기 회장= 영남대 상대를 졸업한 뒤 원사 생산업체인 태광산업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사원으로 입사, 초고속승진끝에 공장장까지 거친 그는 1979년 퇴사해 1985년 부도직전이었던 차부품회사인 세원물산을 인수한 뒤 불과 20여 년만에 대구경북지역 5위권의 차부품업체로 키웠다. 차체를 주력 생산품으로 하는 세원그룹은 현재 국내법인 4곳(대구·영천)과 해외법인 1곳(중국 베이징)에서 연간 3천800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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