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한권의 책] 딸은 좋다/채인선 글·김은정 그림

아들인 나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아버지는 비록 가난했지만 영적인 분이셨다. 어릴 땐 아버지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 들수록 이해하게 된다. 그에 반해 어린 시절 내가 맹목적으로 편들곤 했던 어머니는 그저 생활의 투정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앉았던 여러 남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한 여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성장한 후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동성간에는 설명하기 힘든 공감 코드가 작동하는 모양이다.

흔히 '딸은 크면 엄마와 친구가 된다.'고 한다. 실제로 소곤소곤 반말을 주고받으며, 때때로 각자의 남편을 두고 사악해 보이는 공모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엄마와 딸은 특별한 관계다. 엄마와 딸은 남자들의 상식으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애정 관계'를 유지한다. 엄마와 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상대를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딸은 좋다'는 엄마만이 딸에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갈등, 사랑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딸'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딸은 좋다'의 배경은 딸이 태어난 70년대 초부터 그 딸이 성장하여 다시 아기를 낳는 현재까지. 본문은 딸이 아기를 낳기 직전 사진첩을 보며 끝을 맺지만 뒤 표지는 딸이 자신의 딸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딸이 태어나면서 시작된 이야기가 딸이 성장하고 결혼하여 다시 딸을 낳는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 순환 구조를 통해 딸과 엄마간의 영원성, 엄마만이 딸을 낳을 수 있는 절대성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은 좋다. 엄마가 딸을 보고 방긋 웃으면 딸도 엄마를 보고 방긋 웃는다. 엄마가 딸을 보고 있지 않으면 딸은 가까이 다가와 엄마 팔을 잡아끌고는 웃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엄마가 웃을 때까지 딸은 그렇게 한다.'-본문 중에서-

아쉽게도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성장한 아들은 더욱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못마땅할 것은 없다. 옆에 앉아 소곤대는 친구 같은 자식(딸)도 좋지만, 바람 부는 땅으로 홀로 걸어가는 자식(아들)의 뒷모습도 보기 좋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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