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세기의 추억] ⑬나루터

이젠 아련한 뱃사공의 구슬픈 노랫소리…

바람이 거세다. 강가에서는 아직 봄을 느끼기엔 이르다.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으려니 낭만은 저 멀리 달아나고 없다.

이제는 뱃사공의 구슬픈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고 강물에 눈길을 던진 채 상념에 잠긴 나그네도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강변 풍경만 남아있다. 그 수많은 노랫말은 낭만가들의 장난에 불과한가. 우리네 삶의 풍경은 너무나 숨가쁘게 바뀌어왔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수천 개의 나루터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낙동강만 해도 김해 하구에서 상주 낙동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배가 바삐 오르내렸다. 산에 가로막히고 신작로가 없으니 탈것은 나룻배밖에 없었다. 나루터는 교통의 요지였다. 요즘은 그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묻고 물어 찾아가면 눈에 띄는 것은 자그마한 고깃배 하나. 인근 횟집에서 고기를 잡는 데 쓰는 것이다.

경북 상주 낙동의 풍경도 비슷했다. 예전 나루터 자리에는 콘크리트 다리가 버티고 서있다. 의성 단밀과 상주 낙동을 연결하는 484m 길이의 낙단교.

"20년 전에는 큰 거룻배가 있었어요. 버스와 마차, 경운기, 자전거 따위를 가득 싣고 강을 오갔지요." 매운탕 집을 하는 김판술(64) 씨의 얘기다. 1986년에 낙단교가 완공됐는데 그때까지 상주와 의성 안계 간을 오가는 버스가 배에 실려 오갔다.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방향에서 보면 나루터 자리는 밭으로 변해 있었다. 나루터 앞에 4, 5개의 밥집이 쭉 늘어서 있었고 '색시집'도 있었다고 한다. 호객꾼의 목소리와 행인들의 바쁜 걸음걸이… 그때는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났을 게다.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를 통해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있다. 낭만이 있을 리 없다.

어디 제대로 된 나루터가 없을까. 안동시 용상동 선어대에서 나룻배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나무로 만든 배가 아니라 튼튼한 철선이었다. 반변천 양쪽 기슭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기면 배가 움직였다. 취재팀은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철선에 올라타고 줄을 당겨봤다. 겨우 폭 100m를 오가는 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차가운 물, 딱딱한 밧줄 때문에 손이 시리고 아팠다. 40가구가 사는 남선면 신석2리 주민 대부분은 노인들인데도 능숙하게 배를 움직였다.

김일현(64) 씨는 "나무배가 있었는데 태풍에 떠내려가 20년 전 주민들이 돈을 내 철선을 마련했다."며 "장날 때 멀리 돌아가지 않으려면 나룻배를 타야한다."고 했다. 주민들은 수십 년 전부터 안동시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단다. 선거 때만 되면 다 들어줄 것 같던 출마자들도 당선되고 나면 모른 척한다고도 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서리. '카페촌'으로 잘 알려진 이곳은 예전 한강을 따라 마포 나루터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유명했다. 큰 물줄기 둘이 머리를 맞댄다는 뜻으로 '두물머리'로 불린다. 강가에는 큼직한 황포돛배가 떠 있다. 3년 전 양평군에서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 옆에는 지난 89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허준'에서 쓰였던 자그마한 황포돛배가 전시돼 있다. 산책로가 된 만큼 정감이 날 리 없다. 더욱이 예전 나루터 자리는 사유지여서 시꺼먼 철문이 출입을 막고 있었다.

관리인 임신섭(67) 씨는 "60년대까지는 오르내리는 화물과 행인이 아주 많았다.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된 후 물이 많아져 나루터 흔적이 없어지고 백사장도 사라졌다."고 했다. 이젠 나루터의 명성 대신에 새벽녘 피어나는 물안개로 유명한 곳이 됐다. 우리 삶의 흔적은 모두 바뀌고 없어졌지만 예전 그대로인 것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강물뿐이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