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체면과 염치

사람이 처신하는데 '체면'(體面)이라는 게 있다. 흔히 체면을 세워야 한다고 체면치레에 신경 쓰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다. 체면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체재(體裁)와 면목'이라 하였다. 이는 다분히 남을 의식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또 '염치'(廉恥)라는 말은 조촐하고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하였다. 이 역시 사람 사이의 예의에 관계되는 일이다. 따라서 체면과 염치는 사람의 교양과 관계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의 도리를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는 체면과 염치를 빼놓고 아무렇게나 처신하는 그야말로 체면없고 염치없는 행동을 예사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절에 출가를 결심하고 와 사는 한 행자가 하는 일 가운데 매일 아침 조그마한 누각 청소를 하는 일이 있다. 댓 평 정도의 작은 누각인데 이를 내가 세진정(洗塵亭)이라 이름붙여 간판을 달아 놓았다. 속세의 먼지를 씻는, 다시 말하면 번뇌를 씻어내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 정자에 앉아 있으면 산의 경치가 아름답게 보이고 계곡물이 정자 아래로 휘돌아 흘러 매우 운치가 있다.

그런데 이 정자 때문에 가끔 나는 속상한 일을 당한다. 그것은 정자에 올라가는 관람객들의 몰염치한 행동 때문이다.

가끔 이 정자에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가서는 바닥을 밟아 더럽히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있다. 한 번은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서너 명이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가 떠드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조금 나무랐더니, 이 아가씨들은 냉큼 내려와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냥 절 밑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꽤 나이가 들어보이는 중년의 여자 몇 명이 누각 위에 올라가 무슨 운동을 하는지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치켜들고 떠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보기가 민망했다. 한 사람은 짧은 바지를 입어 허벅지까지 다 보이는 자세였다.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이는 외진 곳도 아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사찰 경내에서 전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벌이는 행동이었다. 체면과 염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체면과 염치가 없어진다 하더니, 그렇다면 이 시대가 정녕 '무교양시대'란 말인가?

지안 스님(은해사 승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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