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도량형

나폴레옹은 단신이 아니었다. 생전 그의 키는 160㎝도 안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망후 검시관이 확인한 실제 키는 167.6㎝였다. 이는 당시 프랑스 성인남성의 평균키 164.1㎝보다도 3.5㎝나 큰 것이다. 이 같은 착오가 생긴 것은 프랑스의 길이 단위 피에(pied=약 32.48㎝)가 영국의 피트(feet=30.48㎝)로 잘못 전달됐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MG42라는 기관총으로 연합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발사속도가 1분당 1천200발로 영국의 비커즈 기관총(1분당 600발)을 훨씬 앞섰고 무게도 가벼웠다. 발사할 때 나는 독특한 기계음 때문에 '히틀러의 전기톱'으로 불렸던 이 기관총과 마주치면 연합군 병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곤 했다. 대응책 마련에 고민하던 미국은 복제를 선택했으나 실패했다. 센티미터(cm)를 인치(inch)로 환산하지 않아서다.

1999년 1억 2천500만 달러가 들어간 미 항공우주국(NASA)의 무인 화성기후궤도탐사선(MCO)이 화성 상공에서 폭발해버렸다.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사는 야드 단위로 설계했으나 NASA의 조종팀은 미터법 단위로 착각, 탐사선을 정상보다 훨씬 낮은 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화성 대기권과의 마찰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이달부터 모든 도량형을 국제 표준단위로 대체하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소리가 높다. 사실 '금 3.75g'보다 '금 1돈'이 더 편하다. '32평형 아파트'라고 하면 금방 감이 오지만 '전용면적 105.79㎡'는 계산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래의 단위는 품목과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1근의 경우 야채는 200g, 과일은 400g, 고추'고기는 600g이다. 1마지기도 땅심에 따라 100평에서 300평까지 달라진다.

이 같은 단위의 차이로 인한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다. 똑같은 30평짜리 아파트라도 실제 면적은 100㎡도 되고 99㎡도 될 수 있다. 이 차이로 세탁기를 넣을 수도, 넣지 못할 수도 있다. 비법정 계량과 법정계량 사이에 1%만 차이가 나도 소비자 손실은 2조 7천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어떤 계산근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전래의 단위가 혼선을 일으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은 불편하지만 자꾸 쓰다보면 g이나 ㎡도 익숙해질 날이 올 것이다.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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