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장수기업] ①일본 후쿠미츠야사

380년간 빚은 사케(청주)…장인정신에 취한다

▲ 후쿠미츠야사의 술을 담그는데 사용되는 지하수. 뛰어난 수질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회사의 역사와 함께한다.
▲ 후쿠미츠야사의 술을 담그는데 사용되는 지하수. 뛰어난 수질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회사의 역사와 함께한다.
▲ 후쿠미츠야사에서 생산하는 각종 청주. 상설 시음회장을 만들어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술 제조 기법과 시음 행사를 갖는다.
▲ 후쿠미츠야사에서 생산하는 각종 청주. 상설 시음회장을 만들어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술 제조 기법과 시음 행사를 갖는다.

"38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습니다. 병만 달라졌을 뿐 맛은 그대로인 셈이죠."

도쿄에서 서북부 지역인 노도 반도에 위치한 가나자와시.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케(청주) 공장인 후쿠미츠야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인들의 음주 소비량이 해마다 줄고 최근 들어서는 외국산 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전통술 산업은 말 그대로 사양산업. 그러나 후쿠미츠야사는 연매출이 증가하며 성장세를 달리고 있다.

이 회사가 380년의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힘은 '좋은 술'에 대한 고집 때문.

히로시 야나이(57) 상무는 "청주에 알코올을 섞지 않는 전통 방식으로 청주를 만드는 공장이 일본 내에 우리 회사를 포함해 몇 개밖에 되지 않는다."며 "전체 청주 소비량은 해마다 5%씩 줄고 있지만 순수 쌀로만 빚는 술은 몇 년 전부터 매출이 5%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쌀로만 청주를 빚게 되면 원가 부담이 30% 이상이 되지만 가격은 알코올을 섞은 청주보다 10% 정도 비싸 대다수 주류 회사들이 전통 방식을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연간 생산량이 1.5ℓ기준으로 150만 병에 이르지만 연매출은 300억 원 정도로 매출면에서는 규모가 작지만 후쿠미츠야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창업자의 13대 자손인 후크미츠 씨가 사장으로 있는 이 업체가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경영 철학은 '확신을 가져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 히로시 상무의 설명이다.

2차 대전 이후 청주 업체들이 잇따라 원가 절감을 위해 '알코올'을 섞은 청주를 만들고 인공적 발효 기법 등을 동원해 술을 만들고 있지만 후쿠미츠야사가 '좋은 술'에 대한 고집을 지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경영 철학이 깔려있다.

현재 공장의 위치도 '좋은 술'의 두 가지 재료 중 하나인 '물맛'이 좋은 지하수가 나오기 때문.

또 '질 높은 제품'을 유지하기 위한 회사의 노력은 곳곳에 배어있다.

'술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창업자의 유언에 따라 4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는 술을 빚지 않는다. 기온이 올라가면 술의 원료인 누룩의 맛이 변하며 냉동시설을 가동해도 맛을 살리기가 어렵다는 것. '전통 기술'에 대한 고집은 '첨단 기술'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물론 '좋은 술'을 유지하기 위해 연중 5개월 동안 종업원 120명의 임금 부담을 회사 측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특히 이곳은 일본의 장수 기업 대부분이 그렇듯 철저한 장자 계승 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물려주고 나머지 후손들은 절대 경영에 간섭 못하게 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30년 동안 후쿠미츠야사에서 근무해온 히로시 상무는 "태교도 술로 한다는 말이 있듯 후계자에게는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경영 수업을 시키며 공장에서 술 제조 기법을 몇 년간 익힌 뒤 대표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며 "가족의 경영 참여를 막는 것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반드시 분란이 생긴다는 경험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 회사도 마땅한 후계자가 없으면 사위나 능력 있는 양자를 들여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는 전통을 이어왔다.

후쿠미츠야사는 2년 전부터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술과는 관계없는 업종같지만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술을 만드는 발효 기술을 활용해 100% 쌀로 만든 건강성 화장품을 생산한다.

히로시 상무는 "술을 만드는 기술자들의 피부가 희고 매끄러운 현상을 화장품 생산에 반영했다."며 "제품을 만든 지 1년 만에 연간 매출이 10억 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처럼 후쿠미츠야사도 연매출의 상당 부분을 기술개발비에 쏟아붓고 있다.

"식품 중 기호도가 가장 민감한 것이 술로 시대 흐름에 조그만 늦춰지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는 만큼 끊임없이 연구 개발을 해야 한다."며 "또 좋은 술은 기술자로부터 나오는 만큼 종업원들의 연봉도 일본 기업보다 항상 높게 책정하고 있다."고 했다.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기술을 최우선시하는 철저한 장인 정신,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온 일본 장수 기업의 뿌리에는 이 같은 정신이 공존하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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