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문화예술계가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문화예술이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식품이나,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감성 중심의 드림소사이어티 시대의 도래에 따라 문화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까지 인식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교양의 요소로서뿐만 아니라 지식경제시대 경쟁력의 근본인 창의력의 원천으로서, 또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산업으로서 문화예술이 부상하는 시대적 대 전환기를 맞은 셈이다.
변화의 추세는 문화예술의 저변확대, 시민을 찾아가는 문화예술의 형태로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멜로디가 흐르는 음악도시' 프로젝트에 따라 지하철 반월당역과 두류공원 솟대광장, 동대구역,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대구월드컵경기장 등은 이미 시민들이 상시적으로 합창, 성악, 국악, 연극, 무용 등을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문화예술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는 가벼운 공연, 전시 등으로 일반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친근하고 쉽게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전략과 더불어 각종 공연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피아니스트 김선욱·한동일, 연극 연출가 박근형, 트럼펫 안희찬… 올해 개최된 시립예술단의 각종 공연에 국내 최정상급 외부출연자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공연 수준이 향상되고 관람객도 20% 이상 증가했다.
대구시립오페라단이 서울시오페라단과 공동 제작한 '리골레토'는 한국 최고의 바리톤 고성현과 테너 이현, 소프라노 이윤경 강혜정 등이 출연, 잊지 못할 감동의 무대를 만들었다. 최고의 공연이나 문화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것만큼 확실한 대중화 전략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셈이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이 창단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구에서 공연을 갖고, 시·도립 국악단이 합동 연주회를 영천과 대구에서 잇따라 개최하는 등 행정구역의 벽을 넘어 공연이 펼쳐진 것도 올해 지역 문화예술계의 특징이다.
클래식 강좌도 늘어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오페라교실'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것이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수성아트피아는 이달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차례씩 클래식 정복 시리즈 '마티네 콘서트'를 개최하고, 대구시립국악단도 이달부터 월 2차례씩 대구문화예술회관 메세나홀(구 중정홀)에서 '11시의 클래식 산책'을 연다.
이 같은 문화예술 대중화 바람의 영향으로 독주회와 독창회도 급증했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은 "올해 들어 한 달 평균 30여 건의 독창회나 독주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는 예년보다 100% 가까이 증가한 것"이라며 "방송사, 각종 병원, 우체국 등에서도 음악회와 전시회 등이 활발히 개최되고 있어 문화예술 행사가 일상의 일부분으로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미술계의 경우 대중화가 상업화의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98년 이후 미술 등 전시분야의 불황이 길어지면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지역 미술계의 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최근 미술계 전반의 호황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재력가나 애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화나 아트 포스터 등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 유명작가의 작품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데 비해 판화나 아트 포스터는 100만 원 미만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백프라자에서 '아트 포스터 전시회'가 열렸고, 이번 달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판화비엔날레'가 개최될 예정이다.
판화·포스터 전문매장 '애플 그린'이 5월에, 아트페어 전문기획사 '리 아트'가 지난달에 문을 열고, 대구MBC에서 옥션 'M'을 오는 8월 말 오픈하려는 것도 지역 미술계의 대중화 상업화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30대 젊은 구상화가의 인기도 급부상했다. 서울로 진출한 도성욱 씨나 곧 상경 예정인 이정웅 씨, 그 외에 윤병락 씨가 대표 주자로 개인전이나 경매시장, 아트페어에서도 작품이 걸리는 대로 팔리고 주문도 밀리면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다수의 작가들이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입지를 넓혀 가며 대구 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문화예술의 산업화와 관련,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뮤지컬. 올해 제1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열렸고, 지역 연극계에는 뮤지컬 제작 바람이 불고 있다. 극단 마카는 '약전골목' 제작을 추진 중이고, 한울림도 '그랜드체이스- 카나반의 전설' 제작에 착수했다. 대구시립극단 이상원 전 감독은 뉴컴퍼니를 설립,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를 제작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중국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지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역에서 불고 있는 뮤지컬 제작 열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전문 뮤지컬 배우, 음악감독, 안무가 등 전문 인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연극에 음악을 접목시킨 어설픈 작품이 양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배선주 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사무처장은 "크게 뮤지컬과 오페라가 대구 공연예술을 대표하고 있다."면서 "국내 최초로 대구에 음향과 조명·의상·소품·무대세트 등의 제작기반을 클러스터 형태로 갖추고 보이스센터(성악센터) 등 관련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공연예술 중심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 인터뷰-최영은 대구예총회장
"대구 문화예술계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최영은 대구예총회장은 "예전의 문화예술인들이 자기 만족적인 예술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시민들에게 예술적 성과를 전달하고 함께 향유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기초예술진흥을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는 것은 정말 획기적인 일입니다. 국제오페라축제에 이어 국제뮤지컬축제가 개최되는 것도 지역 문화예술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최 회장은 "물론 미흡하고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그것을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들 무대를 발전시켜 문화도시 대구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작품과 예술 활동에 더욱 매진함으로써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여유를 갖고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견해,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회장은 "전환기에 주어진 기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상생 협력과 올바른 정책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 인터뷰-장재호 대경연구원 연구실장
"문화산업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뮤지컬과 게임입니다. 게임의 경우에는 지난 5, 6년간의 집중 투자와 노력으로 선도기업이 출연하고, 각종 인프라도 갖추어짐에 따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재호 박사(대구경북연구원 첨단산업연구실장)는 뮤지컬에 정책적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유료관객 비중이 높아 상업성이 큰데다가, 다른 지역에 비해 대구는 문인등록 비율이 높아 시나리오가 활성화될 잠재력이 있고, 성악과 연극 등의 저변까지 넓어 종합예술이자 산업으로서의 뮤지컬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그러나 "대구의 가능성은 잠재적인 것일 뿐 아직 발현된 것은 아니다."면서 "아직 '자폐증'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대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악·연극·무용·문학 등 순수예술 분야가 꽃을 피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산업으로서의 뮤지컬과 게임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장 박사는 또 "게임 스토리가 뮤지컬이 되고, 뮤지컬이 게임으로 만들어지며, 사이버 교육이 오프라인 출판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문학과 인쇄·출판, 순수예술을 포함한 종합적 관점에서 문화산업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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