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타고나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 여하에 따라 계발될 수 있는 것일까? 경북고(41회),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4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해 온 탤런트 신충식(66). 그가 말하는 배우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고령군 운수면에서 태어나 고령초교, 고령중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대구 남산여고에서 6개월 정도 교편을 잡은 것을 제외하고는 40년 넘게 브라운관을 통해서 서민들과 울고 웃으며 살아온 셈이다. "교직을 그만두고 무작정 약장사를 3개월 정도 따라 다녔어. 약장사하면 우습게들 생각하는데 말야, 그게 아냐.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없었던 시절에 약장사는 그 시대 최고의 스타였으니까."
약장사는 장사꾼이기 전에 원조 토크쇼 MC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뱉어내는 입담과 재능은 어느 배우 못지않다. 그가 3개월 동안 약장사를 따라다닌 것은 그저 약이나 팔자는 것은 아니었다. 경북대 재학시절 '그린스테이지'라는 연극반 활동을 하며 배우의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연극과 무대가 좋고, 등장인물을 맡아 관객들에게 감정을 뿜어내는 그 깊은 맛에 이끌려 배우가 된 것.
"평생을 배우로 살아가고 있지만 큰 배우가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배우는 표현의 기술만 갖고 있다고 해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없거든.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모든 마음을 담고 표현하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큰 배우가 될 수 있지."
타고 난 배우라고해도 평생을 천직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배우가 되는 좁은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배우라는 직업도 없어지는 셈이다. 때문에 배우의 노력은 끝 없이 평생 동안 이어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첫 방송활동을 1967년 MBC 공채 성우 3기로 시작했다. 이 시절 라디오 연속극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 시절에는 성우들 인기가 대단했지. 방송드라마가 없으니까 탤런트라는 직업도 없었고. 성우가 되려면 시험을 봐야한다는 거야. 그래서 서울로 달려갔지."
그의 목소리는 타고난 듯 하다. 노년이 된 지금도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고 발성도 힘이 차다. "당시에는 성우시험에 필기시험도 봤어. 당시에 내가 배우로서 드물게 대학을 나왔으니까 같이 시험을 본 성우지망생들이 다 내 필기시험을 보고 베껴 썼지. 연기력들은 출중했으니까 내 덕에 합격한 성우들이 꽤 많지." 그러면서 당시 최고의 인기 라디오 드라마 제목을 줄줄이 외운다. 아낌없이 주련다. 빨간마후라, 떠날 때는 말없이, 저 눈밭에도 사슴이, 전설 따라 삼천리, 태권동자 마루치, 손오공, 오발탄, 김삿갓 북한방랑기. 그는 말하는 도중에 신이 나고 흥겨운지 당시를 떠올리면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라디오를 툭툭 치는 시늉을 한다.
그의 서울생활은 MBC 드라마 개국과 함께 당시 제작된 '장희빈'에 출연하면서 방송 탤런트로 완전히 바뀐다. 이렇게 시작된 탤런트 생활은 '전원일기'에서 보여주었던 구수하고 뚝심있는 '종기네 아버지'역 만큼 40년의 세월을 수많은 드라마에서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로 시청자와 함께 걸어왔다.
배우로 40년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그는 방송 연기자들의 발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맡아 연기자 권익보호를 위해 쓴 소리도 거침없이 뱉아냈다. 수년 전 큰 수술을 받은 뒤로 방송 일도 쉬엄쉬엄하면서 경기도 강화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부부가 같이 산다. 그는 불쑥 희망 이야기를 꺼낸다. "희망이 없으면 삶에 활력이 없어. 사람이란 뭔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있어야 기운차게 살아가잖아. 나이 들면서 자꾸 희망이 없어져가. 그게 문제야."
대경대학 연예매니지먼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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