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이제는 창작뮤지컬 '대장금'을 들고 나타난 송승환을 만났다.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보이는 이미지에 캐주얼 차림을 한 그. 젊은 세대들의 문화 기호를 꿰뚫어보는 예리함을 가졌지만 이 마저도 편안함으로 포장할 줄 아는 사람이 송승헌이었다.
그는 공연제작프로듀서로서 창작뮤지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창작뮤지컬은 우리 손으로 빚어서 만든 거잖아요. 수십 년을 내려온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맛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죠. 계속 공연하면서 다듬고 또 다듬어서 더 좋은 '대장금' 공연이 되도록 할 겁니다."
드라마와 뮤지컬 대장금은 어떻게 다를까? 그는 "드라마에 비해 멜로 라인을 좀 더 보강했다"고 했다.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무대도 뮤지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60명의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춤과 음악의 향연은 연기로만 표현됐던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기에 충분 할 것입니다."
뮤지컬 대장금을 만들어 내는데 꼬박 2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작곡에 투자한 시간만도 1년. 제작단계부터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대작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우리나라 토종 뮤지컬이 성공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아시아 시장에서라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류열풍도 계속되고 있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은 편이지요. 성공한 드라마로 빛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값에 뒤지지 않을 만한 무대와 우리나라 전통적인 미를 한껏 부각시킨 장치들을 통해 대장금을 다시 한번 부활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송승환의 역작 '난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10년을 난타와 함께 살아온 그의 인생. 전 세계 연극인들의 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한국 공연 문화의 위상을 단단히 못밖아 놓았고, 난타 전용 극장은 객석의 80%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일 정도다.
문화도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손수 눈으로 확인시켜준 그의 거침없는 도전정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아역 배우로 시작해 청춘스타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무렵, 뉴욕행 비행기에 훌쩍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4년 동안 길거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뉴욕 한 복판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것을 향한 세상공부를 계속했다.
"뉴욕에 가기 전에는 연극이 희곡에만 의존해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뉴욕에서 봤던 것은 문화의 다양성이었지요. 한가지의 방식으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자심감을 얻게 된 거죠."
기획은 단순한 아이디어로만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보편적인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도전과 인내, 그리고 현실로 바꾸어 놓는 실천적인 행동들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걸 해낸 사람이 바로 송승환이다.
그는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에 대해 무한한 기대를 내비췄다. "전 세계 에서 노래방이 이처럼 많은 나라도 드물죠. 그만큼 대중들은 노래와 흥겨움에 친숙해 있습니다. 좋은 뮤지컬 공연이 많이 만들어질 수록 대중들의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네 가지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배우, PMC 프로덕션의 대표, 뮤지컬프로듀서, 명지대 뮤지컬 공연학과 교수.
그 어느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일이라며 늘 에너지를 불태우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문화산업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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