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책 읽는 소리 가득한 집

얼마 전 한 고교 교실을 찾은 일이 있다. 여름방학 때 어디서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많은 학생들이 "학원서요."라고 했다. 보충수업 받으러 학교에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학교-학원-독서실을 줄인 말이라는 거였다. 학교와 학원이야 그렇다 쳐도 독서실은 뭣 하러 가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얼른 손을 들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죠. 집안에 제가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힘들어하잖아요." 모두들 맞다, 맞다 키득거리며 책상을 두들겨댔다.

나오는 길에 학교 근처 한 독서실에 들렀더니 8월 말까지 자리가 다 찼다고 했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려는 열정이 그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가정의 평화 때문에 독서실로 떠밀려 나오는 경우가 적잖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정의 교육 기능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는 현실이 빚어낸 씁쓸한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요즘 가정에서는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모 자식이 서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어릴 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법석을 떨지만, 학교에 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화하고 정 내기를 어려워한다. 그러다 보니 부모든 학생이든 서로 눈 밖에-학생들 말로 학원서-있는 걸 편안해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는 가정은 본 적이 없다. 남다른 천재이거나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가 아닌 한 교육 기능을 잃어버린 가정의 여건을 이겨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19세기 초의 대표적 문인으로 꼽히는 연천 홍석주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어머니가 할머니 곁에 계시다가 물러나올 때는 한밤중이었지만, 나를 무릎에 앉히고 읽었던 책을 묻고 또 전에 가르쳐 주신 것을 외우도록 하여 한 권을 다 외워야만 했다. 잠자리에서는 또 부드러운 말씀으로 옛사람들의 훌륭한 언행을 말씀해 주기도 하셨고, 더러는 경전이나 시문을 밤낮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중략) 어머니는 연로하신 뒤에도 때때로 손수 길쌈을 하시면서 늘 탄식하셨다. "옛사람들이 어떤 집안에 책 읽는 소리와 베 짜는 소리가 들리면 그 집안은 흥하리라 했는데, 이 말이 진정 의미심장하구나."라고 하셨다.'('옛사람 59인의 공부 산책'에서 재인용)

세 아들을 명문장가로 길러 정경부인의 자리까지 오른 그의 모친 영수합 서 씨의 가정교육 방법이 오늘날에도 유용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태중에서부터 영어와 클래식을 들려주는 한국 부모들의 극성은 언뜻 미련해 보이지만, 올바르고 끈기있게 지속된다면 자녀를 우수한 인재로 길러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최고의 미덕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방학부터라도 내 아이 책 읽는 소리가 집안에 가득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보자.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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